숨이 사라지는 깊이에서
이시절 엄마는 시한폭탄 같았다.
엄마의 기분에 먹구름이 끼면 천둥처럼 무서운 목소리가 들렸고, 이내 폭풍우처럼 물건이 날아다녔으며, 마지막엔 거센 해일처럼 손이 올라가는 순간으로 이어졌다.
그 손끝은 때로는 정수리를, 때로는 팔을, 가끔은 얼굴을, 닿는 모든 곳을 휘감고 휘몰아쳤다.
사실, 무엇이 그 폭풍을 일으켰는지는 지금도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엔 괜찮았던 일이, 또 다른 날엔 엄마의 분노를 불러왔다. 같은 말, 같은 행동이 어떤 날엔 지나가고, 어떤 날엔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그 예측할 수 없는 감정의 기류 속에서 나는 언제나 조심해야 했고, 늘 '무엇이 문제였을까'를 스스로에게 되묻곤 했다.
그 시절 어린 나는 마치 난파를 피하지 못한 조각배처럼, 속수무책으로 그 분노의 물결에 휩쓸렸다.
체벌은 부위를 가리지 않았고, 도구도 가리지 않았다.
기억의 저편에는 어린 나로서는 떠올리기조차 버거울 만큼 선명한 흔적들이 각인되어 있다.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엄마의 분노 앞에서, 나는 벽 한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그저 이 태풍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언젠가 그 태풍이 멎고 나면, 엄마는 어느새, 방금 전 나를 때렸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아픈 얼굴로 울며,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라며 나를 따뜻하게 껴안았다.
엄마가 내 몸을 껴안을 때, 엄마의 어깨너머로 조금 전 내 온몸을 강타했던 빗자루가 엄마의 손 옆에 놓여 있었고,
따뜻함과 공포가 한순간에 겹쳐지는 그 장면 속에서,
나는 마치 해일이 휩쓸고 간 바닷가 한가운데 남겨진 표류물처럼 어리둥절한 채 굳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벽 쪽으로 피하던 내 몸이, 이제는 엄마의 품 안에 있었다. 그 말이 진심일까 파도처럼 밀려오는 의문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하면, 더 말 잘 듣고 실수하지 않으면, 다음엔 사랑만 받고, 매는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사랑받기 위해 조심했고, 눈치를 봤고, 무언가를 바라는 일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가 다시는 나를 때리지 않게 하려고,
엄마가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들고 싶어서,
엄마가 바라는 ‘착한 아이’의 틀에 나 자신을 가두기 시작했다.
점점 ‘엄마의 눈치’를 세상의 기준처럼 여기며 자랐다.
집안의 공기가 무거워지거나 엄마의 얼굴이 조금만 굳어져도, 입술이 일직선으로 닫히기만 해도 가슴이 조여왔고, 방 안에 숨듯이 들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려 애썼다.
작은 기척 하나에도 바다가 뒤집힐까, 태풍의 잠이 깰까 조심스러웠다. 고요 속에 파문이 번질까 봐, 나는 숨 대신 정적을 삼켰다. 나는 늘, 파도 아래 잠든 분노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존재해야 했다.
첫 폭풍을 맞닥뜨리고 난 뒤, 한동안 서럽고 아파서 참 많이 울었다.
몸에는 늘 알록달록 꽃이 피어 있었고, 그 위에 덧나는 감정들은 언제나 혼자 견뎌야 했다.
하지만 울어도 달래줄 사람, 걱정해 줄 사람, 안아줄 사람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눈물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
참아내는 것이 익숙해졌고,
어느새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감정은 눌리고, 마음은 서서히 굳어갔다.
그렇게 나는 아이의 몸에 갇힌 어른이 되어버렸다.
원하는 게 있어도 말하지 못했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었고,
항상 누군가를 먼저 배려하고, 나를 감추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나일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