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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열 일곱 번째 이야기

by 라라클

새로운 팀장은 저녁 회식을 유난히 좋아했다.


하지만 그 시절 나에게 회식은 그저 지옥 같은 자리였다. 그들에겐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는 즐거운 시간이었겠지만, 내겐 업무의 연장선이었다. 없는 회의록을 억지로 쓰고, 영수증 처리까지 고민해야 했으니까.


나는 팀장에게 회의록 작성 업무를 분담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경력이 있어도 제일 늦게 입사했으니 네가 맡는 게 맞다”라며 잘라 말했다.


어느 날 저녁 회식 자리, 나를 괴롭히던 선임이 소주잔을 들고 부서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돌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물론 나는 그 대상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제외되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괴롭힘과 따돌림에 지쳐 있던 나는 퇴사를 결심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시도해 보기로 했다. 팀장에게 부서 이동을 정식으로 요청한 것이다.

“팀장님께서 제 업무 수행이 미덥지 않으시다면,

이 일은 직급이 높은 다른 직원이 맡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팀장은 본부장과 상의하라며 대답을 피했다. 두 번이나 다시 찾아갔지만 그는 끝내 말을 돌렸다.


이미 마음 한켠에서 퇴사를 각오하고 있었기에 더는 두렵지 않았다. 결국 본부장을 찾아가 직장 내 괴롭힘과 과중한 업무 때문에 일을 지속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0씨가 혹시 오해한 건 아닐까?”

본부장의 말에 나는 지금까지 기록해 온 자료를 꺼내 보이며,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 증거를 설명했다. 본부장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부서 이동이 되지 않으면 퇴사하겠습니다. 또한 명예훼손으로 신고할 예정이니 이번 달 안에 결정을 내려주십시오.”


회의실을 나서는 순간,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지만 동시에 묘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퇴사를 결심한 용기’가 주는 힘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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