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 사랑

사랑

by 다크브라운

우리는 보통 감정을 표현할 때 능동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유혹한다. 그러나 끌림만큼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끌린다. 마치 감정이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작용하는 것처럼. 사랑이 ‘하는’ 감정이라면, 끌림은 ‘당하는’ 감정이다. 그래서 끌림이란 단어는 어딘가 이질적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내가 감정을 주도하는 느낌이지만, 누군가에게 끌린다고 말할 때는 마치 감정의 주도권이 나에게 없는 것처럼 들린다. 사람은 왜 끌릴까. 단순한 외적인 매력 때문일까, 아니면 더 깊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우리는 종종 ‘이상형’이라는 단어로 매력적인 이성을 정의하려 하지만, 정작 실제로 마음이 움직일 때는 그 기준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우리를 흔들곤 한다. 어쩌면 끌림이란, 단순한 조건을 넘어, 나도 모르게 나의 결핍과 닮아 있거나, 혹은 그것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누군가에게 반응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안정감을 가진 사람, 혹은 나의 조용한 성향과 대비되는 생동감을 가진 사람. 때로는 정반대의 성향에 끌리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에게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요한 건, 우리는 자신이 결핍을 느끼는 지점에서 끌림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정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릴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감정이 넘치는 사람은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에게 이끌리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보완의 관계가 아니라, 상대를 통해 나 자신의 결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하지만 끌림의 본질은 ‘결핍을 채워 줄 상대’를 찾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나의 결핍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인지다. 진짜 끌림은 단순히 상대방이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관계에서 발생한다. 상대가 나에게 어떤 새로운 질문을 던져주는지,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내가 그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통해 우리는 진짜 끌림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어떤 끌림은 편안하고, 어떤 끌림은 불안하다. 어떤 사람은 우리의 깊은 결핍을 건드리고, 우리가 외면해 온 상처를 드러내며, 우리가 피하려고 했던 감정을 마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끌림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는 점이다.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고, 나 자신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관계라면, 그것은 의미 있는 끌림이다. 반대로 나를 소진시키거나 나 자신의 가치를 잃게 만드는 끌림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중독일지도 모른다.

이름을 알기 전부터 알고 있던 것, 그 사람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감각. 끌림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해할 수 없는 확신, 이유 없는 친숙함,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동요. 우리는 그 감각을 따라가지만, 끝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처음 마주했는데도 낯설지 않고, 오래 함께한 적 없는데도 헤어질 때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나의 내면이, 그 사람 앞에서만은 무심결에 드러난다. 그러나 끌림은 언제나 온전한 만남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운명처럼 느껴지지만, 운명은 언제나 우리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끌림이란 단순한 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무언가를 깨우는 일이다.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 우리가 외면했던 감정, 그리고 우리가 찾고 있었지만 어디 있는지 몰랐던 그 일부를.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사랑받기를 원하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끌림이란 결국 내가 알지 못했던 나를 마주하게 되는 출발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Here with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