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우리는 몸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숨을 고르고, 팔을 들어 올리고, 눈을 돌리고, 말을 내뱉는다. 그 단순한 호흡과 움직임이 내 삶을 지탱하는 최소 단위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 속에서 그것들은 결코 단순한 동작으로 남지 않는다. 작은 각도의 기울임, 무심한 말투, 어쩌다 흘린 표정이 쌓여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얼굴보다 먼저 나를 대변한다.
이상한 건, 그 이미지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나와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나는 하루를 버티는 몸으로만 존재하는데, 타인은 그 몸 위에 의미를 덧씌우고, 그 의미가 결국 ‘나’로 굳어진다. 때로는 억울하다. 내가 설명하지 않은 낯선 문장이, 타인의 입을 빌려 내게 씌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오해마저도 끝내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일부가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몸으로 살아가지만, 타인의 이미지로 죽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 불일치를 견딘다. 진실과 이미지 사이의 미세한 시차, 그 어긋남 속에서 인간은 늘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증거 같다. 이미지와 몸 사이의 틈, 오해와 진실 사이의 떨림, 그 불안정한 공간에서만 나는 나 자신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난다.
어쩌면 인간의 삶은 이 시차를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나와,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 사이에는 언제나 틈이 생긴다. 그 틈은 부정할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그렇다고 무너져버릴 수도 없다. 우리는 그 사이를 걸어야 하고, 그 걸음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내가 걸을 때마다 몸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림자는 조금씩 어긋난다. 낮에는 길게 늘어나고, 저녁이면 발밑에 웅크린다. 몸과 그림자가 완전히 겹치는 순간은 거의 없다. 나와 이미지의 관계도 그와 닮아 있다.
타인이 만든 이미지는 결국 나를 왜곡하지만, 동시에 내가 살아왔다는 흔적이기도 하다고.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각인된 몸짓과 말투는 내 삶의 잔상으로 남는다. 언젠가 내가 사라진 뒤에도, 그 잔상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계속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그러니 타인의 이미지로 죽어간다는 말은, 어쩌면 또 다른 방식의 생존일지도 모른다. 나라는 몸이 꺼져도, 그 잔상은 다른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끝내 지워지지 않을 테니까.
결국 중요한 건, 그 불일치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진짜 나만이 진실이라고 고집하는 순간, 나는 더욱 고립된다. 반대로 타인의 이미지가 전부라고 믿어버리면, 나는 나를 잃는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세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그 흔들림을 견디며 살아내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이 가진 유일한 방식의 자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