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1. 서문 ― 세계는 말로 만들어진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비트겐슈타인의 이 말은 언어와 존재의 관계를 단순히 설명하거나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선언처럼, 혹은 경고처럼 들린다. 세계는 내가 보고 느끼는 만큼이 아니라, 내가 말할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 표현되지 못한 경험,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고통은 나의 의식 안에서조차 ‘세계’로 편입되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때의 감정은 뭐라 표현할 수 없어.”
그러나 그 말을 남긴 순간부터, 그 감정은 세계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해되지 않은 감정이 아니라, 말해지지 않은 감정이 문제다.
경험은 있었지만, 표현되지 않았기에 그것은 끝내 나의 세계가 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2. 감정, 이름을 가지기 전까지는 감정이 아니다
오랫동안 심리학계는 ‘기본 감정 이론(Basic Emotion Theory)’에 근거하여 감정을 설명해왔다.
폴 에크만(Paul Ekman)과 같은 학자들은 인간이 진화적으로 타고난 여섯 가지의 기본 감정(행복, 분노, 혐오, 슬픔, 놀람, 두려움)을 보편적이고 선천적인 정서 범주로 보았다. 그는 파푸아뉴기니의 원주민들에게 감정 표정을 제시하고 이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었던 실험 결과를 통해, 감정이 문화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생물학적 보편성’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 인지과학과 감정 심리학은 이 가설에 균열을 내고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ow Emotions Are Made)』에서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언어와 문화, 개인의 개념 체계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개념 구성 이론(theory of constructed emotion)’은 감정을 신체 반응의 직접적 산물이 아니라, 뇌가 맥락과 경험을 토대로 구성해낸 해석적 산물로 본다.
배럿의 연구에 따르면, 어린아이들은 감정 단어를 습득하기 전까지 다양한 얼굴 표정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다. 성인이 보기에 분명히 ‘슬픔’이나 ‘분노’로 보이는 얼굴도, 아이들에게는 그저 막연한 ‘불쾌함’으로만 인식된다.
이는 감정이 단순한 생물학적 반응이 아니라, 언어적 분류 체계에 의존하는 경험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우리는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기 이전에, 그것을 ‘개념화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인식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단순히 이론적 반론에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동일한 생리 반응이나 표정이 전혀 다른 감정으로 해석되는 현상, 감정 단어의 유무에 따라 정서적 구분 능력이 달라지는 실험 결과 등은, 우리가 경험하는 감정이라는 것이 언어를 매개로 구성된 인식의 구조물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3. 언어는 감정을 세계에 배치하는 구조다
언어 없는 감정은 해변에 밀려온 조각들 같다. 파편적이고, 흩어져 있고, 형태를 알 수 없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그 조각들을 주워 모으고, 선을 잇고, 비로소 그 형상을 그린다.
이를테면 “나는 외롭다”는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 떠돌던 불편함, 막연한 허기, 알 수 없는 무기력감을 하나의 단어로 구조화하는 작업이다.
이 단어가 없었다면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것과 함께 머물렀을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다—이름이 없기에, 내가 그것을 다시 호출할 수 없는.
이처럼 언어는 감정을 서랍에 정리해두는 행위다.
‘기쁨’이라는 서랍, ‘후회’라는 서랍, ‘죄책감’이라는 서랍.
이름표가 붙은 감정들은 언제든 꺼내어 다시 기억할 수 있지만, 이름 없는 감정들은 서랍 속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떠돈다.
언어는 감정을 세계 속에 ‘놓는’ 질서다.
말을 할 수 있을 때, 감정은 내가 사는 세계의 일부가 된다.
말을 하지 못한 감정은 나를 스쳐가는 바람이 된다—느껴졌으나 머물지 못한.
4.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었던 것
우리는 ‘이해하지 못한 감정이 있었는가’보다,
‘말할 수 없었던 감정이 있었는가’를 묻는 편이 더 정확하다.
말로 불러내지 못한 감정은 아직 내 세계에 자리 잡지 못한 낯선 방문자다.
“이게 뭔지 모르겠지만 불편해.”, “그냥 기분이 이상해.”라는 말은 감정이 언어화되기 직전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가지만, 세계는 그 선을 넘지 못한 채 머문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느끼지 않은 사람과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두려움을 두려움이라 말하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그 감정에 잠식당한다.
슬픔을 슬픔이라고 불러줄 수 없을 때, 우리는 슬픔 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나의 세계를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 없으면, 감정은 나에게도 낯선 풍경이 되고 만다.
말을 한다는 것은, 그 감정을 내 삶의 지도 위에 하나의 좌표로 표시하는 일이다.
5. 결론 ― 말해지지 않은 세계를 향해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정은, 아직 줄기 없는 꽃과 같다.
언어는 그 꽃에게 뿌리를 내릴 흙을 마련해주고,
감정은 비로소 자신의 자리에서 피어난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들리지 않는 음악처럼
내면 어딘가에 흐르고 있지만,
그것이 가락을 갖는 순간, 우리는 그 곡조 안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말이란,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던지는 빛의 파편이다.
그 조각들이 이따금 서로 닿아 작은 별을 만들고,
그 별들이 모여 나의 밤하늘을 이룬다.
말은 감정을 고백하는 수단이 아니라,
감정을 살게 하는 장소다.
그러니 우리는 결국, 경험한 만큼의 세계가 아니라 말할 수 있었던 만큼의 세계에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