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카포 호수와 마운트쿡 후커 밸리 트래킹
남섬으로의 로드트립 사흘차. 오전 반나절을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보내고 점심께 테카포 호수로 향했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까지 가는 길에 있는 테카포 호수는 뉴질랜드 남섬 여행에서는 꼭 들러야 할 관광명소다. 뭔 호수를 보러 그 먼 길을 가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설산을 배경으로 한 옥빛의 푸르디푸른 광활한 호수는 보기만 해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압도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내가 이걸 보러 이 먼 길을 왔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수를 보자마자 여행의 피로는 싹 씻겨 내려간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테카포 호수까지는 대략 3시간 정도 걸렸다. 이 길 역시 산과 언덕을 여러 차례 넘어야 해서 운전하기 쉽지 않은 코스다. 게다가 크라이스트처치까지는 괜찮았는데, 남쪽으로 가면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는 것을 증명하듯 도로 곳곳에 결빙된 구간이 있어 운전에 더욱 긴장해야 한다. 하지만 가는 길에 마주한 광활한 자연의 풍광은 운전의 피곤함도 어려움도 상쇄시키기 충분하다. 눈 덮인 산은 물론 짙은 흙빛의 산맥과 드넓은 대지가 번갈아 이어지는데 마치 지구가 아닌, 화성에 온 느낌일 정도로 독특한 풍광이다.
드디어 꼬불꼬불 산길을 여러 차례 넘어 테카포 호수에 도착했다. 근 20년 만에 다시 보는 테카포 호수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설산을 배경으로 드넓고 잔잔한 푸른 호수가 눈앞에 펼쳐지자 탄산을 마신 듯 속이 뻥 뚫렸다. 테카포 호수의 지킴이 ‘선한 목자의 교회(The Church of the Good Shepherd)’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켰다.
호숫가에서 교회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돌 던지기 놀이도 하면서 잠시 테카포를 즐겼다. 다만 아쉬웠던 건 해 질 녘에 도착해서인지 호수빛이 한낮일 때보다는 색이 탁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20년 전 테카포 호수에 정오쯤 도착했을 때 테카포 호수가 쨍쨍한 햇빛을 받아 뿜어낸 깊은 옥빛의 색감은 아직도 생생하다.
20년 전에 비해 달라진 점은 주차장에서 호수로 향하는 곳에 보행교가 설치됐고, 화장실이 유료이며, 교회 안에 들어갈 수 없는 것 등이다. 교회는 예배 등 특정 시간에만 개방된다.
테카포 호수를 뒤로 하고 숙소가 있는 트위젤로 향했다. 마운트쿡 트래킹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묵어가기 좋은 선택지다. 마운트쿡 지역에는 숙소가 많지 않고 매우 비싸, 그리 머지않은 데다 가격이 저렴한 트위젤 지역을 숙소로 많이 선택한다. 테카포 호수도 숙소로 많이 선택하는 장소다. 마운트쿡에서 가깝고, 뉴질랜드에서 별을 관측하기 제일 좋은 장소가 테카포 호수여서 하룻밤 묵으면서 별 관찰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도 있다. 테카포 호수 근처에 천문과학 체험시설(Dark Sky Project)도 있다.
다음 날 오전은 마운트쿡 트래킹에 나섰다. 후커 밸리 트랙(Mt. Cook National Par Hooker Valley Track)이 유명하다. 만년설이 쌓인 마운트쿡, 산의 빙하가 녹아 만든 호수와 강이 주는 풍경이 압도적인 곳이다. 후커 밸리 트래킹은 입구부터 제3 출렁다리까지 편도 4km 구간으로, 거의 데크로 이어진 완만한 길을 따라가면 된다. 방문한 날은 등산로 재정비 기간이라 제2 출렁다리 직전에 등산로가 폐쇄돼 아쉽게도 편도 2.5km 구간만 걸었다.
입구를 지나 제1 출렁다리를 건넜다.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거센 물살의 강 위에 설치된 다리는 말 그대로 출렁출렁거렸다. 완만한 산길을 계속 오르자 빙하가 녹아내려 만든 뮐러 호수의 장관이 펼쳐졌다. 그레이한 옥빛이라고 할까, 빙하물만의 독특한 색감에 넋을 잃는다. 탁하면서도 맑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빛깔이다.
뮐러 호수 전망대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잠시 감상하고 하산했다. 길이 오르막이 거의 없어 아이들과도 쉽게 도전할 수 있는 트래킹이다. 입구에 아이젠 착용 권장 안내판이 있는데, 실제로 다녀보니 결빙 구간이 거의 없어 아이젠을 필수로 착용할 필요는 없는 듯 보였다.
왕복 5km 트래킹을 끝내니 벌써 점심때가 됐다. 컵라면으로 간단히 요기한 뒤(물놀이 후에도 컵라면이 최고지만 트래킹 뒤에 먹는 컵라면은 정말 환상적이다!) 우리의 종착지인 퀸스타운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퀸스타운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또다시 장시간 운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