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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훈의 중국평론 Jul 06. 2022

격전을 준비 중인 공동부유론과 ESG


정말 달라 보이는 이 두 개념이 신냉전의 포화 속에서 대치 중이다.


그리고 이 둘이 달라 보이는 궁극적 원인은 이들의 동력 때문이다.


공동부유론•共同富裕论의 동력은 정부의 통제이다.


반대로 ESG의 동력은 시장의 자본이다.


오늘은 이 둘을 중심으로 중국과 서방세계의 경쟁과 공동부유론의 본질을 깔끔하게 파헤쳐보려 한다.


일단 ESG를 다시 한번 리마인드하고 시작하자.


ESG : 한 기업이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버는지의 재무적 요소 이외에 환경보호•Environment, 사회적 책임•Social, 경영 지배구조•Governance에 관한 정보를 통해 기업의 도덕성, 윤리성, 투명성과 미래 가치를 평가하는 항목


전통적 자본주의의 의식 속에서 ‘선의’에 가깝던 이 항목들은 2000년도 영국을 시작으로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스웨덴 등의 서구권 국가들에서 정보 공시가 의무화됐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시 2025년부터는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기업, 2030년부터는 모든 상장사에 대해 이에 관한 공시를 의무화할 계획임을 발표한 바 있다.


물론 공시를 강제한다고 해서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ESG의 행위를 강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중심의 통제 항목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항목들을 무시하고 경영하는 기업들은 ‘오래가기 힘든 풀벌레’ 취급을 받으며 투자 관심 대상에서 배제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이 이를 중시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의 총아 미국의 경우는 시장이 알아서 이 부분을 주도하고 있기에 국가가 나서서 별반 하는 것도 없지만 기업 스스로 눈치껏 잘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예로 ESG의 개념이 보편화되기도 전,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전문 경영인들에게 회사를 맡기고 전액에 가까운 재산을 기부하며 자선에 힘쓰는 것을 들 수 있다.


빌 게이츠가 떠난 마이크로소프트는 MSCI ESG 등급 평가에서 5년 연속 최고 등급인 AAA를 유지하며 자타공인 미국의 1등 ESG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장님 나빠요’로 대표되던 자본주의에서 인간과 기업이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을 극복하게끔 진화한 경영 패러다임이 바로 이 ESG인 것이다.


이것은 18세기 중엽의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발견한 가장 큰 변화이며 혁신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방 자본주의의 진화와 개혁에 대응하는 개념이 바로 중국의 ‘공동부유론’이다.


물론 늘 그렇듯 이는 최근 시진핑이 불렀지만 리메이크된 곡이고, 원작자는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이자 삽질의 대가 마오쩌둥 되시겠다.



마오쩌둥의 시대에 ‘공부론•共富论’이라 불렸던 이 개념은 ‘론’자를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단순했다.


농업이 주가 되었던 시대였던 만큼 모두가 열심히 농사지어서 똑같이 분배하고 다 같이 잘 먹고 잘살자 정도의 구호 수준이라 보면 된다.


이걸 거창하게 만들며 그 유명한 ‘참새 홀로코스트’가 벌어진 것이다.


전국각지를 순회공연하며 원곡을 열심히 부르던 마오쩌둥이 한 지방에서 바짝 긴장한 농민 간부에게 “수확량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뭐요?”라고 물어본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개새들이 똑같이 분배한다고 하니까 다들 쳐자빠져서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으니 거둘 곡식이 알아서 자란답디까?”하고 속 시원히 말을 뱉었어야 했는데...


이 간부도 목숨이 하나인지라 개새가 아닌 참새 탓을 해버렸다.


“참새들이 곡식을 하도 쪼아 먹으니 수확할 곡식이 없습니다... ㅠ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건지, 그저 속아주는 척에 한 감탄사인지, 마오쩌둥의 입에서 비극이 튀어나와 버렸다.


“참새... 저 새는 참 나쁜 새구나.”


그 해 중국 전역의 참새는 공산당의 구호 아래 씨가 말랐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법칙에 따라 천적이 사라진 온갖 해충이 광복을 맞아 대흉년이 일었고 한 해가 지난 후 4천만 명이 아사하는 초대형 인재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시진핑 정권에 이르러 리메이크된 공부론은 ‘공동부유론•共同富裕论’이란 이름으로 나름의 정책방향과 행동강령을 가지고 다시 찾아왔다.


공동부유 3대 정책으로 불리는 이것은 ‘최저층 보장’, ‘부의 재분배’, ‘기업의 사회참여’로 구성되어 있다.


‘최저층 보장’의 경우, 국가적 사회복지의 개념으로 전 인민의 무상의료, 생계보장 등이 포함된다.


‘부의 재분배’는 자본주의의 패악인 산업 독점, 대기업 탈세와 폭리, 소득 불균형 등을 근절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중 ‘기업의 사회참여’ 부분이 제일 골 때리는 파트인데, 뭔가 대단히 심오한 속내가 있나 아무리 파보아도 달랑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


기부를 통한 기업과 개인의 사유재산 공유가 그것이다.


자발적으로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자발적이지 못하면 끌려가고 한참 뒤 침 흘리며 기어나와 “저 기부할게요...” 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중국의 현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억지로 구겨 넣을 수밖에 없었던 항목이 아닌가 싶다.


중국의 빈부격차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중국의 지니계수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러한 통계보다도 심각한 중국의 피라미드형 빈부격차는 높고 또 날카롭다.


지니계수 : 소득분배지표 중 하나로 0부터 1까지의 수치로 표현, 0.5 이상일 때 폭동과 같은 사회 붕괴 현상 발생 가능, 중국의 경우 1997년 0.37, 2019년 0.46, 현재 0.60 이상으로 추정


베이징의 인당 GDP가 16.8만 위안인 것에 반해 깐수(甘肃)성의 인당 GDP는 3.4만 위안으로 한 나라의 GDP라 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전 세계 명품의 최대 시장이지만, 동시에 월 소득 1천 위안(19만 원)이 되지 못하는 지방 소도시, 농어촌 인민이 6억 명에 달한다.


그들의 분노를 해소하고 지지를 구걸하기 위해서는 이런 식의 포퓰리즘이 필요했으리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공동부유론이 ‘돈 많은 애들 센터까서 삥 뜯는 일진놀이’ 정도의 수준에서 끝난다면 결국 ‘저 새는 나쁜 새 시즌2’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중국의 공동부유론은 이제 시작이다.


그렇기에 ESG와 제대로 한판 붙어볼 만한 중국의 공동부유론이 등장할지는 시진핑 주석의 연임을 기점으로 한번 지켜볼 일이다.


리얼 대동사회(大同社会)를 알고 싶다면,

의법치국(依法治国)의 꿍꿍이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중국의 전체주의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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