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필사 20
가을 길
최명란
가을 길을 걷는다
펼쳐진 낙엽마다
발을 맞추며 걷는다
플라타너스 낙엽은
내 신발보다도
아빠 신발보다도 크다
한 철 자란 잎이
십 년 자란 내 발보다
더 크다
<수박씨>中/창비
시인은 가을날 길을 걷다가 플라타너스 낙엽을 밟았나 보다.
내 발보다 크다는 게 신기했나 보다. 나라는 존재가 자연 속에서는 얼마나 작은지 새삼스러웠나 보다.
'발을 맞추며 걷는다'는 표현이 새롭다. 아마도 바람에 날리는 낙엽모습을 포착한 것 아닐까 싶다. 돌돌돌 낙엽이 말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꼭 이런 느낌이 들었다.
자연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나를 아주 작게 만든다. 그 작음은 초라함이 아니고 겸허함이다. 더 큰 사람으로 나가는 디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