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감과 허영심의 초라함에 관하여

해체

by 메모

모든 것은 관계성과 상대성 속에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상대적인 우월감은 곧 상대적인 열등감으로 반전된다. 타인을 찐따 취급하면 단지 찐따가 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분투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인간은 나약하다. 큰 시야에서 바라보면 모두가 거기서 거기,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 찌질한 요소가 두드러지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아예 없는 사람은 없다. 특정인에 대한 우월감이 곧바로 열등감으로 반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사람은 결국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찐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태어나 살아가는 셈이다.

단지 허영심을 표출하기 위해 사람은 온갖 종류의 전략을 동원한다. 나의 자랑거리가 될 만한 점을 단점으로 둔갑시켜 말한다거나 혹은 나의 자랑을 미묘하게 한 후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바로 자기학대적 발언을 함으로써 물타기를 한다거나 혹은 나의 치명적인 단점을 감추기 위해 그보다 더 작은 단점을 일부러 노출시키는 등 온갖 괴이한 전략이 다 동원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에게 진정으로 치명타가 될 만한 점은 좀처럼 입밖으로 꺼내질 않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남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이나마 표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랑하려는 눈물겨운 분투가 남에게는 안쓰럽게 보일 뿐이고, 종국에는 공허하고 헛헛한 마음만이 남을 뿐이다. 나아가 허영심을 표출하기 위해 동원된 자기학대적 발언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우울감를 유발할 수도 있다.

단지 남보다 더 우월하게 보일 목적으로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한다면 본인의 허풍을 감담하기 위해 자기의 역량 이상으로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다. 이는 다시 에너지 소모로 이어지며 악순환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자랑의 목적이 조금이라도 개입되어 있는 발언을 할 바에야 침묵하는 것이 백번 낫다. 허영심을 전제로 한 발언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자기목적적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데, 허영심은 타자의 시선을 전제로 하므로 자기목적적 활동이 타자지향적 활동으로 변모하여 즐거움은 급격히 반감된다. 이는 자기목적적 활동을 통해 형성된 자존감이 급격히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나아가 창조적인 활동을 할 때조차 타자가 물어보지 않는 이상 먼저 표현하지 마라. 타자는 내 일에 궁금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내가 타자에게 그것을 말하는 저의도 의심스럽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에 의하면 창조적인 활동이란 자기목적적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찾기 위함인데, 내가 그것을 타자에게 표현한다는 것은 그 활동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려는 허영심을 타자에게 표현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어느 순간 자기지향적 활동이 타자지향적 활동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만일 그 허영심을 타자에게 간파당한다면 창조적인 활동으로부터 파생되는 열정이 꺾일 수 있으며, 자기목적적 활동에 타자의 시선이 개입되는 순간 활동범위의 제약이 생길 수도 있다. 타자의 시선에 갇히게 되는 순간 자기목적적 활동으로부터 파생된 즐거움은 사라져 버린다. 더군다나 내 말을 듣는 타자는 나의 허영심을 전달받는 것이 고통일 수도 있다. 오히려 타자가 물어보더라도 창조적인 활동은 최대한 비밀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내 활동이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구속받지 않으려면 허영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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