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는 남들로부터 과한 기대를 받으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섬세한 감성을 통해 남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근원적인 부분까지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심리의 근원에 깔려 있는 디테일한 부분, 어두운 부분까지 맞춰주다보면 자칫 그자와 의존관계가 형성될 여지가 있다. 인생의 통찰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보다는 더욱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은 심리가 심화되기 때문이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항상 남의 근원적인 심리까지 꿰뚫어 보면서 맞춰주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일상적으로 받아 온 상대방은 마치 공기와 같이 소중함을 모르고 당연하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오히려 그것이 없어졌을 때 허전함을 느껴 언어라는 왜곡도구를 이용해 어떻게든 그것을 되찾아오려고 궤변을 늘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섬세한 감성을 소유한 자라고 할지라도 항상 고귀한 말과 행동만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대처하거나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를 사람이 가지고 있는 한계로 이해한다기보다는 그에게 실망하고 등을 돌리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이미 그에게는 과한 기대감이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바라본 후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만을 바라본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무위, 무언의 삶은 이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는 묘안이 되는 것이다. 애당초 타인에게 기대감이라는 헛된 망상을 심어주지 않았으면 이 모든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특정 행위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그 특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속받을 일은 없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