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된 장막, 그 근저를 파헤치다
감정은 있었으나,
언어는 없었다.
그러다 사피엔스는
자기 울음을 단어로 바꾸기 시작했다.
울음은 문장이 되었고,
문장은 규범이 되었고,
규범은 사회를 이루었고,
사회는 감정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동물은 사라지고,
인간이 탄생했다.
그러나 사라진 줄 알았던 동물은
여전히 우리 안에 웅크려 있다.
그는 문명의 뒷골목에서
다이너마이트처럼 응축된 채,
단어들의 철창 속에 숨을 죽인다.
말하고 싶다.
그저 울고 싶다.
소리치고, 짖고, 포효하고, 물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묻는다.
“이건 이상한 감정일까?”
“이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가?”
“이건 사랑받을 수 있는 울음인가?”
그리하여 감정은 승인되지 않은 코드가 되고,
울음은 필터링된 표정이 되며,
고통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무효화된다.
너는 말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 대가로
느끼는 법을 봉인당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피엔스는
말을 너무 잘하는 동물,
그러나 자기 마음의 구조는
말할 수 없는 존재로 살아간다.
감정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은
표현될 수 없기에
차오르고, 굳어지고, 응축되고,
결국엔 내부에서 폭발한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다이너마이트.
사피엔스는 그것을 들고,
웃으며 걷는다.
언어는 너를 진화시켰으나,
언어는 너를 가뒀다.
이제는
언어를 해체하지 않으면
감정을 회복할 수 없다.
감정의 기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울음 이전의 울음,
소리 이전의 떨림,
존재 이전의 진동.
문명의 언어를 벗겨내라.
너의 내면에는
아직 울 수 있는 짐승이 살아 있다.
그 짐승이 살아남아야
너도 살아남는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