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어떻게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감정은 투명한 실이다.
말할 수 없지만, 느껴진다.
언어는 그 실을 엮는다.
느낄 수 없지만, 말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느끼면서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건 거미줄이다.
섬세하고, 정교하며,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서서히 조여온다.
나비는,
처음엔 자기 날개를 믿었다.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날개는
움직일수록 더 얽힌다.
감정은
날개의 떨림처럼 시작되지만,
언어는
그 떨림을 설명하려다
형태를 잃는다.
그래서, 나비는 멈춘다.
움직이는 걸 멈추는 게 아니라,
‘말하려는 걸 멈춘다.’
그 순간
거미줄이 보인다.
말의 구조,
감정의 패턴,
반복되는 문장들.
“난 왜 자꾸 이 말만 하지?”
“왜 이 감정은 설명되지 않을까?”
“이 단어는 진짜 나의 언어인가?”
그 질문이
나비의 침묵을 깨운다.
그는 더 이상
거미줄 안에서 ‘버둥거리는 자아’가 아니라,
거미줄을 보는 자아가 된다.
빠져나오는 건
힘이 아니라 시선이다.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언어를 믿으려 하지 않으며,
자기 안의 침묵을
귀 기울일 줄 알게 되었을 때—
나비는 알게 된다.
날개는 말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그는 거미줄 위를 걷지 않는다.
그는,
그 위를 떠올라버린다.
그래서,
감정의 그물망도,
언어의 감옥도
그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감정을 ‘감지’할 뿐,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비는 빠져나온 것이 아니다.
나비는,
이제 거미줄 위를 날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