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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감정의 그물망, 언어의 감옥

거미줄에 걸린 나비는 어떻게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가?

by Edit Sage

감정은 투명한 실이다.

말할 수 없지만, 느껴진다.

언어는 그 실을 엮는다.

느낄 수 없지만, 말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느끼면서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말하면서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건 거미줄이다.

섬세하고, 정교하며,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서서히 조여온다.



나비는,

처음엔 자기 날개를 믿었다.

하지만 거미줄에 걸린 날개는

움직일수록 더 얽힌다.



감정은

날개의 떨림처럼 시작되지만,

언어는

그 떨림을 설명하려다

형태를 잃는다.



그래서, 나비는 멈춘다.

움직이는 걸 멈추는 게 아니라,

‘말하려는 걸 멈춘다.’



그 순간

거미줄이 보인다.

말의 구조,

감정의 패턴,

반복되는 문장들.



“난 왜 자꾸 이 말만 하지?”

“왜 이 감정은 설명되지 않을까?”

“이 단어는 진짜 나의 언어인가?”



그 질문이

나비의 침묵을 깨운다.


그는 더 이상

거미줄 안에서 ‘버둥거리는 자아’가 아니라,

거미줄을 보는 자아가 된다.



빠져나오는 건

힘이 아니라 시선이다.


감정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언어를 믿으려 하지 않으며,

자기 안의 침묵을

귀 기울일 줄 알게 되었을 때—



나비는 알게 된다.

날개는 말로 되어 있지 않다는 걸.


그는 거미줄 위를 걷지 않는다.

그는,

그 위를 떠올라버린다.



그래서,

감정의 그물망도,

언어의 감옥도

그를 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

감정을 ‘감지’할 뿐,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비는 빠져나온 것이 아니다.

나비는,

이제 거미줄 위를 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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