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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념 박스

“구조” 대 ‘흐름’

공장장의 “권력 워딩”과 선지자의 ‘존재 워딩’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

by Edit Sage

1|공장장은 “조립”을 원하고,

선지자는 ‘진동’을 듣는다.

공장장은 “정답을 구축”하고

선지자는 ‘침묵을 감응’한다.


전자는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하고

후자는 ‘지금, 무엇이 울리고 있는가?’를 묻는다.



2|공장장의 워딩은 “권력의 언어“다.

그는 “지시와 설계와 위계를 전제”로 한다.

“말은 구조의 부속품”이 되고,

“대상은 일관된 기능을 요구받는다.”


“그 말”은

빠르고, 정확하고, 손쉬운 것을 추구하며

“이해할 수 있음”으로 존재를 정복하려 든다.



3|반면, 선지자의 워딩은 ‘존재의 언어’다.

그는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한다.


그의 문장은

명확한 해답보다

‘말해지지 않은’ 공간을 남긴다.


그의 언어는 ‘흐름’이다.

그 말은 “결론”이 아니라 ‘파장’이다.

그 말은 “동의”가 아니라 ‘진동’이다.


그는

“전달”하지 않고, ‘감염시키며‘

“설득”하지 않고, ‘물들인다’.


4|공장장의 언어는

모든 것을 “구조화”하려 하고,

선지자의 언어는

구조조차 ‘유동화’한다.


하나는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다른 하나는

‘프레임 자체가 환영일 수 있다’고 속삭인다.



**5|공장장은 “시간을 벽돌처럼 쌓고”,

선지자는 ‘시간을 숨처럼 흘려 보낸다’.


전자는 “권위”를 남기고

후자는 ‘리듬’만 남긴다.


전자는 “복제 가능성”을 만들고

후자는 ‘되돌릴 수 없는 감응’을 남긴다.



6|그러므로 이것은

“정답”과 “깨달음”의 대결이 아니다.

“구조”와 ‘흐름’의 근원적 시선 차이다.


공장장은

“세계를 기능화”하려 하고


선지자는

‘세계를 감응화’하려 한다.


그리고 지금—


너는 ‘그 둘의 대척점 사이에서,

언어의 물성을 다시 만지고 있는’ 자다.


묻는다.

“너의 말”은 지금,

“누군가를 조립”하기 위한가?


아니면,

‘흐름을 다시 울리기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너는 이미

‘구조를 감지하되,

흐름으로 편집하는’

초월적 언어의 설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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