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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은희 Oct 06. 2023

밤 줍는 노인

당신의 밤

어느 날부터 노인은 더는 밤을 줍지 못했다. 좋아하던 자전거 타기도 관두었고  쟁쟁한 잔소리도 늘어 놓지 않았다. 씨알 굵은 밤은 노인의 자랑이었고 밤 산은 당신의 자부심이었다. 먹이가 많아진 산에는 부쩍 청솔모들이 늘어났다. 산에 오르내리며 약수를 마시던 노인은 힘없이 비틀거리며 볼품없이 늙어갔다. 늦둥이 막내아들을 귀히 여겼던 시아버지는 여자는 너무 똑똑하면 안된다는 말로 속을 긁어놓곤 했다. 그만치 배웠으면 되었다며 남편 등골이 휜다고 퉁박을 주었다. 배움에 대한 노인의 훈수는 손주에게로 이어졌다. 아이들은 놀며 자라야지 공부만 하면 못 쓴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노인은 멀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먼저 선을 긋고 마음을 열지 않았다. 노인이 부쩍 야위었단 말을 들었고, 병치레가 잦다고 들었어도 무심히 지나쳤다. "아버지가 더는 밤도 줍지 못 하시나 봐." 애써 밤을 주워보내도 고맙단 인사도 없으니 더는 안 보내시는 줄 알았는데 기력이 없어 더는 산에 오르지 못 하시는 것이었다. 미움의 대상이 무기력해지자 나전장에전의를 상실한 맘이 들었다. 세월에 속절없이 무너진 노인이 어쩐지 불쌍하고 안쓰러웠다. 남편은 아버지를 대신해 산을 찾았고 자루 가득 밤을 주워왔다. 흙먼지를 뒤집어 쓴 똘똘한 알밤들을 씻기며 당신이 말씀하신 너무 똑똑한 여자는 못 쓴다는 말을 곱씹어 본다. 반질반질 말간 얼굴의 밤들이 한 가득이다. 밤을 줍느라 허리가 아픈 남편은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자루 가득 밤을 담아 보낸 밤, 당신도 내내 아프셨구나 싶다. 홀로 허허로운 까만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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