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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Sep 07. 2023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시를 좋아한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 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어린 시절엔 정현종 시인이 말한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섬에 가려면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도 모른 채 친하다면, 진실한 관계라면 일체감을 나누어야 한다 착각했다. 모든 것을 공유하고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만이 진실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을 어느 정도 알만큼 살아온 지금은 안다.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가시 투성이인 고슴도치가 추위를 못 견뎌 서로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가시에 찔려 상처 주고 상처받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으면서도 가시로 찌르지 않을 적정 거리가 필요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고슴도치 딜레마'(Hedgehog's dilemma)라고 부른다. 상처를 입더라도 다가가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 싶은 일체감과 아프기 싫어 멀어지려니 혼자될까 두려운 고립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아야 아름다운 것도 있다. 사람도 그렇고 꽃도 그렇다. 멀리서 바라보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은 아름답지만 가까운 곳에서 보면 이미 떨어진 꽃잎의 허망함이 보인다. 사람들이 지르밟고 간 흔적이 지저분한 얼룩으로 남아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다. 칼릴 지브란이 말한 것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거리가 필요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어야 한다.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 내더라도 줄은 각각 혼자 떨어져 있듯 함께 있되 거리가 필요하다. 참나무와 삼나무는 함께 있지만 떨어져 있다. 서로의 그늘 속에선 성장할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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