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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Oct 03. 2023

대추 한 알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가 있다.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




어릴 땐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나이도 저절로 들지 않았다. 나이 들었다는 건 그만큼 모진 비바람과 세월을 견뎌냈다는 뜻이다. 온몸에 남겨진 상흔과 주름, 마음에 새겨진 아픈 기억과 상처들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알게 했다. 수많은 태풍과 천둥, 벼락이 겸손을 알게 하고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알게 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건 그 많은 시간 동안 나를 여물고 단단하게 만들어준 좌절과 고통, 시련과 상처 덕분이다. 그 덕분에 어른이 될 수 있었다. 대추 한 알이 야물기 위해서도 무서리, 땡볕, 비바람이 필요한 것처럼. 그렇게 나이 들어 어른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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