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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08. 2023

여백

도종환 시인의 <여백>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무에 그리 바쁘다고 하늘 쳐다보지 않고 스마트폰만 보며 걷는 사람들, 정면만 응시한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들 틈에 섞여 쉼 없이 노력하고 바쁘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라 착각했다. 종종거리며 사는 삶은 숨이 차다. 아름답지 않다. 1분 1초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며 정신없이 살았건만 돌아온 건 병든 몸뚱이뿐이었다. 계절의 변화도 모르고 밤을 낮 삼아 잠을 줄여가며 노력했지만 뭐 하나 이룬 것도 없다. 그저 먹고살았을 뿐. 일을 열심히 하지만 일에 눈멀지 않은 사람, 일에 빠져들지 않아 그 일을 통해 자유로워진 사람은 여백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선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분주한 일상 속, 작은 쉼표 같은 여백이 있으면 좋겠다. 아무리 바빠도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와 넉넉함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며 상처받아 경계하고 빈틈없이 살려던 닫힌 마음, 그 마음속에 여백 하나, 틈 하나 있으면 좋겠다. 부서지고 상처받아 더는 열고 싶지 않은 마음 한 자락, 빈틈없이 빼곡하게 여미지만 여백이 없는 마음은 갑갑하다. 아름답지 않다. 빈 하늘처럼, 허공처럼 내 마음에도 그런 틈 하나, 여백 하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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