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시인의 <폐허 이후>는 다음과 같다.
사막에서도 저를 버리지 않는 풀들이 있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 나무가 있다.
화산재에 덮이고 용암에 녹은 산기슭에도
살아서 재를 털며 돌아오는 벌레와 짐승이 있다
내가 나를 버리면 거기 아무도 없지만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곳에서나 함께 있는 것들이 있다.
돌무더기에 덮여 메말라버린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를 만들어 흘러간다.
내가 나를 먼저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인생에서 시련과 고난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행하다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 '이렇게 살바에는 차라리……'라는 극단적 생각이 스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힘든 순간조차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시 살아진다. 살아갈 방도가 생긴다. 폐허 이후에도 내가 나를 버리지 않으면 삶은 계속된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 폐허 속에서도, 모든 것이 불타버린 숲에서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메마른 골짜기에 다시 물이 고이고 물줄기가 흘러가듯 내가 나를 놓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내가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오직 자신을 의지하고 자신에게만 기댄다면, 폐허 이후에도 살아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신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