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있을 자리>는 다음과 같다.
산중에 있는 어떤 절에 갔더니
한 스님 방에 이름 있는 화가의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아주 뛰어난 그림이었다.
그러나 주인과 벽을 잘못 만나 그 그림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천연 산수가 있는 산중이기 때문에
그 산수를 모방한 그림이 기를 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산수화는
자연과 떨어진 도시에 있어야 어울리고
그런 곳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모든 것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살아서 숨 쉰다.
본디 세상 만물은 있을 자리가 있다. 도마와 칼은 주방에 있어야 유용하고 그 쓸모를 다할 수 있다. 꽃은 화분이나 화단에 있어야 귀한 대접을 받고 아름답게 자랄 수 있다. 사람도 그렇다. 자신이 있을 자리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빛이 난다.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그 빛을 잃거나 퇴색할 수 있었다. 그곳이기에 빛나는 그런 사람이 있다. 나의 쓰임새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에 머물 때 가장 편안하고 나다운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은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