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나무 Dec 03. 2023

해피 버스데이

오탁번 시인의 <해피 버스데이>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시골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와 서양 아저씨가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간이 제멋대로인 버스가

한참 후에 왔다

ㅡ 왔데이!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 말을 영어인 줄 알고

눈이 파란 아저씨가

오늘은 월요일이라고 대꾸했다

ㅡ 먼데이!

버스를 보고 뭐냐고 묻는 줄 알고

할머니가 친절하게 말했다

ㅡ 버스데이!

오늘이 할머니의 생일이라고 생각한

서양 아저씨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ㅡ 해피 버스데이 투 유!

할머니와 아저씨를 태운

행복한 버스가

힘차게 떠났다.      




나이 탓일까? 구수한 농담과 친숙한 아재개그가 좋다. 세련되어 보이는 MZ세대의 농담은 크게 공감이 가지 않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X세대인가 보다. 이번 학기 교육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수강생들은 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현직 교사들이다. MZ세대인 학생들은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걸 끔찍이도 싫어한다. 재치 있는 입담과 재미있는 유머를 좋아한다. 핵노잼에 다소 진지충인 나와는 상극이다. 강의 준비를 하는 시간보다 유머집을 뒤적이며 철 지난 유머를 외우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런 눈물겨운 노력을 학생들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착한 몇몇의 학생들은 그래도 피식 웃으며 반응해 준다. 내가 던진 썰렁한 농담에 누군가 웃는다는 것, 사람이라도 웃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행복일일줄이야 미처 몰랐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 어설프고 황당한 해프닝이 연출되었지만 끝까지 소통의 끈을 놓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 서양 아저씨와 할머니는 분명 서로의 진심을 알아챘을 것이다. 그런 두 사람이 탄 버스였기에 행복의 기운이 흘러넘쳤을 것이다. X세대인 나와 MZ세대인 학생들 간의 소통도 서양 아저씨와 할머니만큼의 간극이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작은 욕심이 있다면 내 진심이 학생들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웃게 할 수 있다면, 잠시라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웃을 일 별로 없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있을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