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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Nov 23. 2023

겨울 예찬

겨울이 찾아왔다. 무성한 잎이 즐비하던 우거진 여름의 날을 뒤로하고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화려한 가을 숲을 지나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의 날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나무를 감싸던 화려하고 찬란한 날들은 뒤안길로 사라지고 본질만 남은 혹독한 계절, 겨울이 찾아왔다. 모든 것을 비어냈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겨울의 나무, 앙상하게 남은 가지 위에 눈이라도 소복이 앉으면 그 아름다움은 장관을 이룬다. 나뭇잎이 남아 있었다면 눈이 쌓인 들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을 비어내 메마른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기에 소복이 쌓인 눈이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게다. 그동안 나를 감싸던 겉치레를 모두 털어 버리고 본래의 나와 만나는 시간, 혹한의 계절, 겨울이 찾아왔다.




봄이 꿈꾸게 하고 설레게 하는 시간이라면 겨울은 내면의 본질을 직시하게 하는 시간이다.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을 떨쳐버리고 민낯의 나와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다. 여름이 성장과 확장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수렴의 계절이다. 본질인 뿌리로 돌아가는 계절이다.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면 겨울은 비축된 수확에 의지해 동면하는 계절이다. 다시 새롭게 출발하게 될 봄을 기약하며 휴식하고 쉼을 갖는 시간이다. 호흡을 고르고 봄, 여름, 가을 쉼 없이 달려온 나를 다독이고 쉴 수 있게 하는 쉼표의 시간이다. 그리고 무성한 잎에 가려 보지 못한 나의 본질을, 주렁주렁 달린 열매에 현혹되어 보지 못한 나의 뿌리를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다.



 

내면의 나와 대면해야 하는 겨울의 시간이 찾아오면 겸손해진다. 나의 민낯과 속살을 여과 없이 들여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겨울은 혹독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실을 직시함으로 내면이 더욱 성숙할 수 있게 해 준다. 겨울은 침묵의 계절, 쉼표의 시간, 고독의 시간이다. 그래서인지 겨울이 찾아온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나를 맡기고 침묵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겨울 속으로 들어갈 채비를 해야겠다. 시작하는 봄보다, 성장하는 여름보다, 수확하는 가을보다, 수축하고 수렴하는 겨울의 시간이 더 기대되고 설렌다. 본래의 나와 대면하는 겨울이 좋다. 민낯의 나와 조우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라서 좋다. 그런 겨울이라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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