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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Jan 07. 2024

장석주 시인의 <밥>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귀 떨어진 개다리소반 위에

밥 한 그릇 받아놓고 생각한다.

사람은 왜 밥을 먹는가.

살려고 먹는다면 왜 사는가.

한 그릇의 더운밥을 얻기 위하여

나는 몇 번이나 죄를 짓고

몇 번이나 자신을 속였는가.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으며

잡고 싶은 손을 잡지 못했다.

나는 왜 밥을 먹는가, 오늘

다시 생각하며 내가 마땅히

지켰어야 할 약속과 내가 마땅히

했어야 할 양심의 말들을

파기하고 또는 목구멍 속에 가두고

그 대가로 받았던 몇 번의 끼니에 대하여

부끄러워한다. 밥 한 그릇 앞에 놓고, 아아

나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한다. 밥 한 그릇에

나를 팔지 않기 위하여.      




먹고사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어릴 적엔 몰랐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해 전쟁터 같은 직장을 다녀야 하고 보고 싶지 않은 이와 아무렇지 않게 마주해야 하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놓고 아니라는 말을 못 해 내 책임인양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억울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힘이 없으면 아무리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결국 살아남은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한다. 한 그릇의 밥이라도 먹기 위해서는 잘못한 게 없음에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 더럽고 치사해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밥 한 그릇 때문에 그럴 수 없는 현실을 직면할 때 바로 이런 게 지옥이겠거니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밥 한 그릇을 먹고 생명을 이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해 꾹꾹 눌러 참는 게 우리들 대다수일 게다. 생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밥 한 그릇을 위해 마지막 양심까지 팔아버리는 가롯 유다는 되지 않으면 좋겠다. 조금 부족해도 양심을 버리고 얻은 밥 열 그릇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얻은 밥 한 그릇이 더 숭고하고 고귀하지 않은가. 밥 한 그릇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는 가롯 유다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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