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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Jan 14. 2024

슬픈 웃음

맹문재 시인의 <슬픈 웃음>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마흔을 넘기면서 깨달은 사실 중 한 가지는

내게 슬픈 웃음이 많다는 것이다.      


업신여기는 사람 앞에서도

증오하는 상대 앞에서도

손해를 당하면서도

어느덧 습관이 된 나의 웃음     


그리하여 전철역 계단에서 웅크리고 자는 노숙자를 보면서도

해고 노동자의 부고를 읽으면서도

엉터리 심사위원의 변명을 들으면서도

실컷 울지 못한다.


텔레비전의 코미디를 보면서도

화사한 벚꽃을 보면서도

놀아달라는 아이의 투정 앞에서도

실컷 웃지 못한다.




먹고살기 위해 부당해도 참았고 무시받아도 참았다. 억울해도 참으면 넘어갈 줄 알았다. 무시받고 조롱받아도 가슴에 뜨거운 울분이 치솟아도 삼키면 될 줄 알았다. 화를 내야 할 때 참았고 만나는 것조차 끔찍이 싫은 이를 만나도 거짓 웃음을 웃었다. 거들먹거리는 상대에게 어퍼컷 한 방을 날리는 대신 머리를 조아려야 했고 무시와 냉대, 조롱하는 이에게 한술 더 떠 아무렇지 않게 헤헤거려야 했다. 이런 나는 괜찮지 않았다. 정작 분노해야 할 상황에서 화를 낼 수 없었고 정작 울어야 할 상황에서 울지 못하게 되었다. 정작 웃어야 할 상황에서 웃을 수 없게 되었다.




느낌과 감정을 억제하고 눌러오다 보니 이젠 자신의 감정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느낌과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는 사막처럼 버석거리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나는 이제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다. 그저 슬픈 웃음만 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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