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나무 Feb 27. 2024

공광규 시인의 <병>이라는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고산지대에서 짐을 나르는 야크는

삼천 미터 이하로 내려가면 오히려 시름시름 아프다고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은 동물     


주변에도 시름시름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직장도 잘 다니고

아부도 잘하고

돈벌이도 아직 무난하다     


내가 병든 것이다. 




병든 자는 누구인가? 예전엔 세상에 잘 적응하지 못해 이런저런 이유로 끝까지 해내지 못해는 사람을 부적응자, 낙오자로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다물고 끝까지 완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세속에 젖어 적당히 더럽고 추해진 나는 아프기 전까지 그럭저럭 무난하게 세상 속에서 살았다. 아프고 난 지금은 알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도에 그만두고 포기한 사람들이 나약하고 의지가 박약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걸. 그들은 어쩌면 야크와 같은 여리디 여린 영혼,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었을까. 순수한 영혼일수록 더 상처받고 더 아프다. 적당히 때 묻고 적당히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온 사람은 병들고 더러운 세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잘 적응하며 살아간다. 무난하게 잘 살아가는 내가 건강한 게 아니라 더럽고 추한 세상에 순응하며 적당히 아부도 하고 양심도 팔며 살아가는 병든 자일지 모른다. 생계를 위해 적당히 타협하고 요령도 피우며 무난하게 살아가는 내가 병든 것일지도 모른다. 흙탕물을 마시고도 배탈 나지 않는 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부러진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