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나무 Sep 12. 2024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살아보니 알겠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걸. 내가 다시 산다면 바라던 일이 생겼다고 크게 들뜨지도 않을 것이며 좋지 못한 일이 생겼다고 크게 실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기회가 위기로 바뀌기도 하고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진정 위기인지, 기회인지는 지나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되어 전혀 바뀌거나 변할 것 같지 던 인생이 얄궂게도 상상조차 하지 않던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거대한 바람과 폭풍 속에 휩쓸려 인생의 온도가 변하고 인생의 계절이 바뀌기도 한다. 분명 좋은 일이었고 축하받은 일이 머지않아 괴로운 일로 변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이 되기도 한다. 분명 아프고 슬픈 일이었는데 그 일이 외려 축복으로 변하고 가장 행복한 일이 되기도 한다




류시화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에 이런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수도승이 제자와 함께 하룻밤 묵어갈 집을 찾는다. 다들 거절해 갈 곳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된다. 모두가 거절했지만 그 부부는 기꺼운 마음으로 숙소를 제공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늙은 암소 한 마리에 의지해 근근이 살고 있었다. 부부는 암소의 우유를 짜거나 치즈를 만들어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였다. 다음날이 되자 수도승이 제자에게 암소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라고 했다. 친절을 베푼 부부에게 은혜를 갚아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몹쓸 짓을 하라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제자는 워낙 스승이 단호하게 말해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랐지만 마음속에 미안함과 찜찜함이 남았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제자가 우연히 그곳을 여행하게 되었다. 그때 일이 생각나 사죄라도 하고 싶어 그 집을 찾았다. 놀랍게도 다 쓰러져가던 오두막은 온데간데없고 대궐 같은 집이 떡하니 있는 게 아닌가. 제자는 너무 놀라 거기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려고 문을 두드렸다. 세월이 지나 늙기는 했지만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그때의 가난한 부부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암소가 절벽에 떨어져 죽은 후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을 배워 버려진 밭에 약초를 심고 묘목을 키웠다고 했다. 암소가 죽었기에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고 그들에겐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했다. 그제야 제자는 그날 스승의 뜻을 이해했다고 한다. 

        



좋다고 붙잡고 집착하는 것이 성장과 발전을 방해할 수 있다. 불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최고의 행운이 될 수도 있다.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나쁜 일이 일어났다고 절망하고 좌절할 것도 없고 좋은 일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좋아할 것도 없다. 다만 사건이 일어났을 뿐 그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어난 사건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세계적 비즈니스 코치이자 연설가인 지그 지글러(Zig Ziglar)는 중요한 강연을 앞두고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교통체증이 심해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하지 못해 탑승 예정이던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비행기를 놓치고 나니 몹시 화도 나고 당황스러웠지만 딱히 할 일도 없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공항에 설치된 TV 화면을 보고 있는데 자신이 놓친 비행기가 방금 추락했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살아남은 승객이 단 한 명도 없다는 뉴스에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고 한다. 자신이 탑승하려고 했던 비행기에 탔다면 오늘날 지그 지글러는 없었을 것이다. 불행이라고 여겼던 사건 때문에 살아남았고 살았기 때문에 작가로, 강연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 




불운이라고 여긴 것이 목숨을 구하는 계기가 되고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오늘 지금, 불행하다고 한탄할 게 아니다. 그것이 어떤 놀라운 축복과 행복으로 변할지 우리로는 알 수 없다. 행복은 직진만 하지 않는다. 때로는 불행 뒤에 숨어 찾아오기도 하고 한참을 돌고 돌아 저쪽 모퉁이에서 간신히 만나게 될 때도 있다. 알 수 없는 인생이기에 그토록 찬란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다. 인생은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품고 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시리도록 아름답다. 슬프고도 눈부시다. 내가 다시 산다면 오늘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났다고 크게 기뻐하거나 들뜨지도 않을 것이다. 행복은 때로 불행이라는 외투를 걸치고 오기도 한다. 불행이라고 해서 무조건 매몰차게 문전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했던 일이 언제 바뀌어 지상 최대의 불운이 될지 모른다. 이상형의 사람을 만났다고 좋아했지만 알고 보니 사기꾼일 수도 있고 끔찍한 범죄자일 수도 있다. 축하받으며 결혼했지만 고통스럽게 이혼할 수도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했지만 알고 보니 최악의 블랙 회사일 수도 있다. 좋은 직장, 명문대에 들어갔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본인은 그곳에서 정신병을 얻어 고통받을 수 있고 심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다만 일어난 사건일 뿐이지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시간이 흘러야 그것이 좋은 일이었는지 나쁜 일이었는지 비로소 알게 된다. 만약 다시 산다면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일 뿐,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느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일어난 사건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이전 14화 움직이고 운동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