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언제나 입으로 낚인다. 사람도 역시 입으로 걸려든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명언이다. 이 명언과 더불어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인간은 입이 하나 귀가 둘 있다. 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다" 내 경우엔 가르치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필연적으로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많이 하면 공허했고 허탈했다. 당일 강의 주제와 관련된 설명을 주로 하고 가급적 주관적인 견해보다 객관적 내용 위주로 말했다. 그래도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견이 튀어나올 때도 있다. 더군다나 소수이긴 하지만 몇몇 학생은 집요하게 질문을 통해 사견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 대부분은 좋은 의도보다는 감추어진 꼼수가 많았다. 내 의견을 묻는 경우 답변을 하면 구설에 휘말리게 되었다. 굳이 불필요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을 경계하게 되었고 무슨 의도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말은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왜곡되어 자신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들었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해석했다. 그러다 보니 언어를 매개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침묵은 금이다'와 같은 격언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말과 글이라는 언어를 통해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고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주도되기보다 집단지성을 통해 누구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인이 자율적으로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민 사회에서 논의나 토론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유한다. 논의와 토론을 통해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 가치로 나아갈 수 있으며 보다 건설적 대안이 도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소통이 강조되고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된다. 소통이 강조되는 시대에 말을 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오해가 수반되기도 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고 심지어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라는 말까지 공공연히 회자된다.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 속을 썩이거나 끙끙대기만 할 수도 있다.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쟁취하고 찾아야 하는 오늘날 사회에서 침묵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말은 신중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말은 가급적 삼가고 가능한 한 말은 아끼고 줄이는 것이 좋다. '십어구중 불여일묵(十語九中 不如一黙)'이라는 말이 있다. '열 마디 가운데 아홉 마디 말이 옳더라도 침묵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말이 많으면 실수할 수밖에 없으니 가급적 말을 줄이라는 의미이다. 요즘 같은 노출 사회에서 자신을 노출하거나 개방하지 않으면 무시받거나 심지어 뭔가 감추어진 의도가 있는 사람,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필요한 노출이나 자기 개방이 오히려 자신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말은 화살과 같아서 한 번 쏜 화살을 되돌릴 수 없듯이 한 번 내뱉은 말도 주워 담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실수로 잘못된 말을 했다고 해도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의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 상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고 자신의 인격에 흠집을 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신이 처한 입장이나 관심에 따라 동일한 사물이나 상황을 다르게 인식한다. 이를 인식의 주관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누군가는 식빵을 생각하고 다른 이는 바게트를 떠올리며 또 다른 사람은 크로켓을 생각하거나 어떤 사람은 붕어빵을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바게트를 떠올리며 빵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다른 사람은 붕어빵을 생각하며 이야기를 듣는다면 나의 이야기는 전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서로 간의 공유된 이해에 도달하는 상호 주관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이러한 간주관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말은 엄청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저 사람과는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각자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다르고 경험한 바가 다르기 때문에 무언가를 말하거나 소통할 때는 특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말은 아니지만 글로써 사유의 흔적을 남기는 일도 두렵긴 마찬가지다. 기록으로 남지 않는 말도 그 파장이 어마어마한데 하물며 기록으로 남는 글은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쓴 글로 인해 오해받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우리는 진공상태에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지식정보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적당한 나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각자 입장이나 상황이 다른 여러 사람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이기에 언제든 오해가 발생할 수 있음도 인지해야 한다. 내 입장에서는 절대적 진리이고 보편적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도 타인의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내적 언어가 발화될 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지, 불필요한 말은 아닌지 경계하고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에 새겨야 할 것 중 하나는 언제 어디서든 '신중하게 말하라'라는 것이다. 내가 다시 산다면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며 꼭 필요한 경우라도 가급적 신중하게 말하려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