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나무 Sep 24. 2024

삶의 관객이 아닌 주인이 될 것이다.

유방암을 계기로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음을 경험했다. 생명을 가지고 있는 건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 속에 살지만 생명체가 육신을 통해 세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 짧은 생의 순간에도 사회적 시선이나 기대에 맞추어 사느라 정작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살지 못한다. 분명 내 삶이지만 나로 산 것이 아니라 사회의 아바타 혹은 부모님의 아바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타인이 원하는 삶을 대신 살아온 것뿐이다. 한 번도 내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에 흥이 나지도 신이 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들려줄 나만의 인생 이야기도 없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없는 인생은 지루하고 밋밋하다. 활력이나 생동감이 없다. 그저 하품 나고 졸리는 영화 한 편에 불과할 뿐이다.




돌아보면 인생의 매 시기마다 선택의 순간이 있었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치열하게 내면의 나와 마주하며 문제를 풀어야 했고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지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런 순간마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자문을 구하고 조언을 들었다. 나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고 현명한 사람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내가 아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식의 조언을 해줄 뿐 그 조언이 내게도 정답이라는 보장은 없다.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 산다면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조언 해준 상대방의 아바타로 사는 것에 불과하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보다 현명하고 경험 많은 타인의 합리적 생각이 아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스스로를 속박하고 자유를 잃어버린 어리석은 말의 우화가 떠오른다. 옛날에 아름다운 초원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던 말이 있었다. 사슴이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나 초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사라졌다. 말은 사슴에게 몹시 화가 났다. 사슴에게 복수하기 위해 지나가던 나그네에게 부탁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면 나그네가 요청한 대로 자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나그네를 등에 태우고 다니겠다고 약속했다. 나그네가 사슴을 죽여 복수에 성공했고 문제는 해결됐지만 말은 또 다른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자유를 잃고 평생 나그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그네의 강요에 의해 말이 자유를 잃은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문제 해결을 위해 나그네에게 속박된 것이다. 



타인이 권유하는 잘 닦여진 안전하고 무미건조한 아스팔트가 내겐 맞지 않을 수 있다. 영감이나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하품 나고 따분한 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가고자 하는 아스팔트 길이 지름길이 아니라 에둘러 돌아가는 먼 길이 될 수도 있다. 지루하고 따분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 주변에서 말려도, 다소 어설프고 엉뚱하더라도 내가 가고 싶고 좋아하는 길을 가야 신이 나고 흥이 난다. 좋아하는 길을 가더라도 넘어질 수 있고 상처 날 수 있다. 그러나 원해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실수하더라도 배울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깨달을 수 있다. 누군가가 판단해 준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살아가는 삶은 활기차고 신명 난다. 에너지가 생기고 즐거움이 만들어진다. 희망이 생기고 의지가 일어난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나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탄생된다.




걸음마를 배울 때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배운 사람이 있기는 할까? 자전거를 탈 때 한 번도 상처 나지 않고 다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누군가 가르쳐준다고 해도 단박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진 않는다. 스스로 넘어지고 균형 잡고 다시 넘어지는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걸을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다. 타인에게 빌려온 조언이나 충고를 통해 아는 것은 온전하고 충만한 앎이 아니다. 몸소 부딪히고 체험해야만 비로소 온전하고 충만한 앎에 이르게 된다. 타인이 충고한 대로 사는 삶을 멈추고 스스로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만약 내가 다시 산다면 내 삶의 관객이 아닌 주인으로 살고자 노력할 것이다.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 것이다. 누군가의 조언을 듣고 따라 살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오류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넘어지고 상처 나더라도 스스로 주인이 되어 부딪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럴 때 활력 넘치고 신명 날 것이다. 지루하지 않고 살아있음을 느낄 것이다. 만약 내가 다시 산다면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