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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Oct 01. 2024

골목을 더 자주 걸을 것이다.

어릴 적 살던 동네는 골목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빼곡히 연결되어 있었다. 골목을 떠올릴 때면 유년의 기억이 소환된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골목이었다. 어린 시절을 골목에서 보냈고 골목에서 성장했다. 골목엔 삶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양한 이야기가 흐른다. 지나간 옛 추억이 숨 쉰다. 누구네 집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리, 누구네 집 딸이 전교 1등을 했고 누구네 집 아버지는 승진을 했다는 소리,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라는 소리, 다양한 이야기들이 골목을 타고 흐른다. 마음 울적한 날엔 골목을 걷고 싶다. 사람 냄새나고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간직된 골목을 걷고 싶다. 골목을 걷다 보면 누군가의 삶의 궤적이 느껴진다. 내가 살아온 삶이 누군가의 삶과 교차된다. 골목은 사유하게 하고 사색하게 만든다. 골목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설픈 철학자가 된다.



골목엔 이야기가 흘렀다. 사람 사는 냄새가 묻어났다. 유년의 골목엔 이웃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햇살 좋은 날이면 곡식을 말렸고 대추를 말렸다.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골목에 나와 얼음땡 놀이, 오징어 놀이, 삼팔선 놀이를 했다. 어떤 날은 고무줄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제기차기를 하기도 했다. 엄마가 밥 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지 골목을 휘젓고 다니며 땀범벅이 될 때까지 놀았다. 암 수술을 받고 나서 가장 걷고 싶었던 길은 바로 유년의 시간 대부분을 보낸 골목이었다.  죽음에 대해 무방비 상태였던 당시의 내게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죽을 수 있다는 공포였다.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잡념이 사라졌다. 나를 짓누르던 죽음에 대한 공포도 서서히 옅어져 갔다. 공원을 걷는 것도 좋았고 한적한 수목원을 걷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가장 걷고 싶은 길은 골목이었다.  유년의 시절을 보냈던 골목은 도시 개발 사업과 도심 재생 사업으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삭막한 아파트와 아스팔트 도로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을 뿐 추억 속 골목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뻥 뚫린 아스팔트와 보도볼록은 자동차를 위한 길일뿐 사람을 위한 길은 아니다. 굉음과 소음, 매연을 품고 달리는 자동차와 함께 걷는 길은 고역이고 고통이다. 골목마다 담긴 사연과 추억을 없애버리고 특색도 없고 개성도 없는 획일화된 회색 건물을 짓고 인위적으로 조성한 작은 공원을 짓는 것이 낙후된 도시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일까? 걷고 싶어도 차도나 공원이 아니면 더 이상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이런 현실이 슬프다. 개발이라는 망령에 도취되어 편리함만을 추구하다 중요한 삶의 터전인 골목을 잃었다. 이젠 사색하며 천천히 걸을 수 있는 길을 피트니스 센터 가듯 일부러 찾아 나서야 한다. 아파트 인근에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이 아니면 그나마 걸을 곳도 마땅치 않다. 불행하게도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밀집 지역이라 골목을 찾을 수가 없다. 없는 건 골목만은 아니다. 이웃도 없고 특색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보도볼록과 아스팔트만이 존재하는 현실이 슬프다.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독특한 문화가 있는 골목이 그립다. 특별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 장소, 어릴 적 골목이 그립다. 마음 울적한 날엔 골목을 걷고 싶다. 헛헛하고 공허한 감정을 바람처럼 날려줄 골목이 걷고 싶어 진다. 우리네 삶의 궤적이 묻어나고 특별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골목을 걷고 싶다. 내가 다시 산다면 골목을 더 많이 걷고 싶다.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가 흐르고 추억과 역사가 공존하는 골목을 걷고 싶다. 깨끗하지 않아도, 향기롭지 않아도 우리네 삶의 이야기가 흐르는 골목을 더 많이 걸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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