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도 부모님이 안 계신 세상은 너무도 낯설고, 상투적으로 표현하자면 부모님이 계시기만 해도 보호받고 있는다는 심리적 방패가 사라졌다. 이제는 내가 내편 없이 무방비로 세상 전면에 노출된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어서 부모님 댁에 가서 엄마와 투닥거리며 말다툼하던 것도 그리울 뿐이다. 물론 더 다정하게 해 드릴 걸 하는 후회도 많이 한다.
그러나 두 분이 절대적 약자로 지내신 마지막 시간 속에서도, 부모님은 나의 보호자였고 나의 지지자였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었다. 내가 명백하게 잘못했을때도 네 잘못 아니라고 내편을 들어주고, 내가 다른 사람 눈에는 대단하지 않게 보여도 나를 근거 없이 과대평가하고 무조건 잘될 거라고 축복해주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다시는 없는 것이다.
두 분이 현실에서 사라지시니 어릴 적 부모님의 우산 아래 가족이 완전체로 존재했을 때의 안전하고 따뜻한 시간이 과거에 묻혀서 사라지는 것이 너무도 아쉽다. 어떤 형태로든 보관해서 내 안에 살려놓고 싶다. 그때의 기억을 꺼내 정리해서 대안 우주처럼 때때로 가서 놀고 돌아오고 싶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도 저자의 페르소나인 조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죽은 동생 엘리자벳이 살아있는 과거를 봉인해서 그녀가 존재하는 다른 세상을 창조하기 위해서였다.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그녀의 작품 속에서는 여전히 베스가 존재한다. 그것이 작가가 하는 일이고 모든 예술의 내용인 것이다.
나도 짧은 글들이지만 부모님 살아계셨던 시간들을 봉인하고 싶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겠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시간의 축약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지만, 정정했던 부모님이 존재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내가 글로 쓴 세계 속에 우리를 이끌고 사랑하시던 부모님이 계신다. 거기에 가서 대안 우주 속에서처럼, 또는 평행 우주 속에서처럼 잠시 머물다가 에너지를 듬뿍 받고 현실로 돌아오고 싶다.
거기 가서 무한한 지지를 받고 오면 가슴이 따뜻해지면서 지금의 힘든 일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삶이 힘들고, 자신이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태해져서 주저앉아 있을 때 “너는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야”라는 뜬금없는 격려를 받으면 나를 일으켜 세워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부모님께 받은 사랑과 무한한 지지의 에너지를 나의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부모님의 은혜는 자식을 사랑하며 갚는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부모가 자신들을 무조건 사랑하고 잘되기를 바랐다는 마음을 알고, 때로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 기억으로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또 자신이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다 펼칠 수 있도록 부모가 뒤에서 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뒤늦게 부모의 진심을 깨달은 나처럼, 그들도 나중에 과거의 부모가 한 일을 원망하다가도 부모의 더 깊은 마음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부모도 내가 섭섭해하던 일을 잊지 않았었다는 것을 깨닫고 힘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