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번 봄은 없다

식물이 주는 위안

by 윤병옥

아버지를 여의고 들여놓은 화분

봄이 되어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등 가지각색의 꽃이 순서대로 아름답게 피면 감탄하면서 감상한다. 또한 그들이 차례로 져서 사라져도 내년에 반드시 다시 핀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다지 슬프지는 않다.

인간도 계절을 순환하면서 살아간다. 철 지난 계절의 옷을 집어넣었다가 다음 해 다시 꺼내 입는다.

그러나 타성에 젖어서 그러한 질서가 영원히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 배신의 순간이 찾아온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음번 봄은 없고, 보관했던 옷들을 입을 일은 더이상 없는 것이다.

논리학이나 과학에서 귀납을 배울 때 ‘A도 죽는다, B도 죽는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의 객관적인 원칙이 나의 가족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잘 적용이 되지 않는다.

존재는 참으로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몇 걸음 나가서 산이나 공원에 가면 식물이 천지인데 왜 집에 화분들을 키우고 사는지 몰랐었다.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존재의 허무함이 몰려와서 감당하지 못했을 때 나도 모르게 제일 먼저 한 일은 하얀색 리시안서스 꽃을 사서 화병에 꽂고, 초록색 야자수 화분을 산 것이다.

밖에는 봄이라 색색의 꽃들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는데 아버지를 선산에 모시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에 갔을때 유난히도 아름답게 피어있던 겹벚꽃을 보면서 느끼는 역설적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꽃들도 한 때다. 인간도 한 때다...

부모님도 나도 잠깐 세상에 머무는 것이다.

상실의 시기에 식물의 흰색과 초록색은 한결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장례식장에서 흰 국화를 쓰는 이유가 다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한 때지만 생물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위안을 주었고, 내가 그들을 잘 살 수 있도록 보살필 때 그들도 나를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려동물, 반려식물에서 위안을 얻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인간이 그들을 보살핀다고 생각하지만 거꾸로 그들도 인간을 보살핀다.

내가 무력한 부모님을 보살폈다고 생각했지만, 부모님이 나를 보살핀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초록색 화분과 꽃화분의 흙이 말랐는지 만져보고 물을 준다. 일정 시간 햇빛을 받을 수 있게 위치도 변경해준다. 그러나 너무 오래 햇빛을 받지 않게 집안으로 들여놓기도 한다.

생화는 시원한 물로 갈아서 꽂고 시든 꽃은 골라내고 가지 끝을 잘라준다.

과거에 관심 없이 화분들을 베란다에 방치해서 햇빛에 타게 하거나, 물을 안 주어 말려 죽인 적이 많았던 경험에 비하면 마음가짐이 새삼 달라졌다. 생화나 1년생 식물도 있으니 그리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고유하게 가진 시간 동안’ 좋은 상태로 보살피고 보내는 것이 나에게도 기쁨을 주고 자연의 질서에 따랐다는 편안함을 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들에게 동물이 주는 위안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지금은 식물이 주는 조용한 위로가 더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식물은 강요하지 않고 조용히 존재하고 기다려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을 여읜 슬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긴 호흡의 초록 식물과 더불어 화려하지 않은 야생화 종류의 생화를 집에 놓으려 한다.

유한한 생명이지만 살아있는 시간 동안 아름다운 존재감을 주는 소박한 꽃과 초록 식물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부모님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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