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병옥 Mar 22. 2023

행복하기를 선택하다

나의 생은 유일하고 좋다

     

봄날의 양재천

대학에 들어가서 만난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20대 초반 대학교 1학년 때 같은 계열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으니 사십 년을 넘게 이어오는 관계이다. 2학년에 전공을 정할 때 전공이 갈렸지만 신입생 시절에 친해진 친구들과 여전히 우정을 나누고 있다. 친구들은 자타공인 모범생들이었고 성품도 좋아서 긴 시간 동안 서로 감정 상하는 일 하나 없이 만났다. 사회적으로나 부모로서나 열심히 살아온 그들은 좋은 결과를 이루었지만, 누구 하나 티 내지 않고 소박하게 살고 있다.

자신들이 이룬 현재를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겸손하게 사는 친구들을 두어 나는 참 좋다.

    

최근 모임에서는 경치 좋은 이태리 식당에서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따뜻하고 맑은 봄 날씨를 즐기기 위해 양재천을 걸었다.

식사에서도 친구들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빛을 발한다. 서로 다른 메뉴를 선택해서 먹었는데 각자 고른 메뉴를 다들 맛있다며 만족하며 먹었다. 다른 친구 음식의 맛은 보았지만, 누구 하나 다른 사람 메뉴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입맛이 다 다르니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메뉴를 골랐고 자기것에 모두 만족한 것이다.

봄을 맞은 양재천은 아름다웠다. 그 근처에 사는 한 친구는 그곳을 자주 산책하는 친구라 그곳의 특성도 잘 설명해 주었다. 하천이 강남구와 서초구를 거쳐서 흐르는데 하천을 관리하는 지자체가 달라서 하천 주변 조경도 다르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강남구쪽은 큰 나무와 관목등 자연스러운 조경인 반면, 서초구쪽은 조형물도 많고 화려한 색의 꽃도 많다. 이것도 취향에 따라 어느 쪽을 좋아하는지는 다를 것이다.

걷다가 한 친구가 양재천도 좋지만 그녀가 사는 목동 근처의 안양천도 좋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물론 우리 동네를 흐르는 운중천과 탄천이 익숙하고 좋다. 서대문에 사는 다른 친구는 매일 안산을 산책하는데, 친구는 그곳이 좋다고 한다. 결국 다 자기 동네가 좋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인공 에블린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서 살고 있으나 삶이 녹록지 않다. 운영하는 빨래방은 압류가 될 위험에 처해있고, 남편은 다정하지만 능력이 없다. 유일한 희망인 딸은 동성 애인과 살고 있으며 엄마와 늘 충돌한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정의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투사가 되었다. 국세청 감사에서 위기에 몰린 그녀는 과거에 자신이 될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들을 떠올린다. 그녀가 남편과결혼하지 않고 아버지의 소망대로 노래를 계속해서 가수가 되었더라면, 유명한 배우가 되었더라면, 무술의 고수가 되었더라면, 심지어는 동성 애인과 특이한 사랑을 했더라면 등등의 상상을 한다. 이것을 다중우주로 표현하고 여러 우주를 옮겨 다니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딸에게 자신이 강요한 여러 가지 틀이 딸을 얼마나 절망에 빠트렸나를 깨닫는다. 결국 이런 모든 것들을 보듬어준 다정한 남편이 가정을 지켜냈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녀는 방랑끝에 기꺼이 지금 여기로 돌아와, 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을 다정한 눈으로 보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기를 선택한다.   


인생이건 음식이건 동네 환경이건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것은 없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는 없고, 자신이 과거에 놓쳤던 선택지를 다시 걸어가볼수도  없으며, 모든 메뉴를 다 먹어볼 수도 없고, 모든 동네에서 다 살아볼 수는 없기 때문에 어차피  비교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거기서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이 최고이고 행복이다.

내가 고른 파스타는 맛있고 내가 사는 동네에서 산책하는 것은 즐겁다. 더 비싼 음식을 먹고 더 비싼 집에서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게 되면 속물 이웃들과 옷과 가방의 브랜드를 들먹이며 매일 자산 이야기만 해야 하는 끔찍한  대가를 치러야  것이다.

내 인생에서 내가 선택해서 만난 배우자와 나의 아이들과 친구들도 객관적으로는 최고가 아닐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기쁨을 주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배우자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친구들과 더 비싼 음식 먹으며 더 좋은 집에서 사는 대안 우주로 가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지금 이조건 그대로, 소소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 하나도 잘 알지 못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