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텀 스레드>-경계 없이 이어진 존재

그를 죽이고 다시 살리는 그녀

by 윤병옥

천재적인 의상 디자이너 레이놀즈가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신의 머무는 건물에 있는 작업장에 깔끔하게 면도하고, 광이 나는 구두를 신고, 포마드로 머리를 빗어 올린 모습으로 내려온다.

그가 대상의 이미지에 맞게 디자인한 작품을 입은 여성들은 다 당당하고 아름다워진다.

따라서 그의 ‘우드콕, 런던’이라는 브랜드의 옷은 그 시대 상류층 여성이라면 누구나 입고 싶어 하는 옷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그는 주기적으로 작업을 못하는 순간을 맞는다. 과연 그 저주는 풀릴 수 있을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침 식사 테이블에 레이놀즈와 누나 시릴, 연인 조한나가 같이 앉아있다. 그는 노트에 의상을 구상하며 스케치를 하고 있고, 조한나가 빵이 맛있다며 권하자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며 그녀를 무시한다.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면서 시릴은 동생 레오파드에게 이제 조한나를 내보낼 때가 되었다며 그녀에게 선물로 작품 드레스를 주겠다고 한다. 레오파드가 누나에게 엄마가 보고 싶다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자, 시릴은 그에게 시골집에 내려가서 쉬고 오라고 권유한다.

시골집에 가는 도중 호텔 레스토랑에 들어간 그는 한 웨이트리스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많은 음식을 주문해서 허겁지겁 먹고는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데, 그녀는 자신의 연락처를 적은 쪽지에 “배고픈 손님, 내 이름은 알마예요.”라고 적어서 건네준다.

저녁 식사 데이트 후 자신의 시골집에 알마를 데려온 레이놀즈는 아버지가 죽은 후 두 번째 결혼식을 위해 그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찍은 엄마의 사진을 보여주며 엄마가 늘 그와 함께 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의상 솔기에 쪽지나 엄마의 머리카락 같은 자신의 비밀을 몰래 넣어둔다고 고백한다. 그는 그녀를 단위에 올라가게 하고 여러 가지 천을 그녀에게 대보며 의상을 구상한다. 이때 누나 시릴이 들어와서 몸의 치수를 적으며 알마가 동생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아름답다며 그녀를 보면 배가 고파진다고 고백하고 런던의 집으로 데려오면서 많은 의상을 제작한다.


얼마 후 아침 식사 장면에서 기시감이 드는 일이 생긴다. 알마가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버터를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바르고 와삭 깨물어 먹자, 레이놀즈가 짜증을 내며 나가버린다. 누나 시릴이 그는 아침 시간을 망치면 하루를 망치고 일을 못한다며 아침을 따로 먹으면 어떻겠냐고 한다. 실망한 알마가 나와서 그가 만든 옷의 솔기를 들춰 보다가 자신의 이름 “알마”라고 쓴 쪽지가 보이자 그제서야 미소를 짓는다.

레이놀즈가 정성껏 제작한 많은 의상들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하는데 알마도 모델로서 옷을 입고 고객들에게 보여지고, 이 모습을 레이놀즈가 몰래 엿보는데 그것을 알마도 느끼고 행복해한다.

번아웃된 레이놀즈를 위해 이번에는 알마가 운전을 하여 다시 시골집으로 가고 그는 완전히 아기같이 알마에게 의존하며 휴식을 하고 회복해서 런던으로 돌아온다.

런던으로 온 알마는 이제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아침 식사를 한다. 그때 그는 돈 때문에, 부자이고 귀족이기는 하지만 천박하고 알코홀릭인 바바라의 재혼 발표 기자회견 드레스를 억지로 제작하게 되지만, 그녀가 그 옷을 입고 술에 취해 쓰러진 후 업혀서 집으로 돌아가자 알마는 그의 예술작품인 옷이 아깝다며 그 여자 집에 찾아가 옷을 벗겨서 가져온다. 자신의 작품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알마에 감동한 레이놀즈는 격정적으로 알마에 키스하며 엄청난 식욕으로 음식을 먹어 치운다.

그의 사랑을 확인한 알마가 단둘이 집에서 요리를 해주고 싶다며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저녁요리를 만든 다음 레이놀즈를 맞지만, 그는 이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나를 찾고 그녀가 버터를 많이 넣어서 만든 요리도 싫어한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존재라고 비난하고, 그녀는 그가 만든 규칙으로만 돌아가는 게임을 멈추라고 소리친다.


그녀는 그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망가진다고 생각한다. 알마는 독버섯을 피하는 방법에 대한 책을 읽고 어떤 것이 독버섯인지를 공부한 다음, 숲에 들어가 독버섯을 채취하고 그것을 갈아서 보관한다. 누나 시릴은 둘 사이가 위험에 빠진 것을 알고 동생에게 그녀를 그만 괴롭히고 떠나게 하라고 말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화를 낸다.

공주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도중, 알마가 준 독버섯이 든 차를 마신 레이놀즈는 마네킹에 입힌 웨딩드레스에 쓰러지며 옷에 구두약의 얼룩을 묻힌다. 그는 앓아눕고 직원들이 옷을 다시 만드는데 알마가 솔기 안을 들여다보니, “나는 저주받지 않았다.”라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의식이 혼미한 상태에서 과거에 그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의 환각을 본 레이놀즈는, 엄마가 그립지만 목소리가 안 들린다고 하며 절망하는데, 그때 알마가 그를 간호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와서 엄마의 환각 위에 겹쳐진다. 회복한 레이놀즈가 자신을 간호하다가 소파에서 자는 알마를 보며, 그녀 없는 인생은 상상할 수 없다고, 자신의 저주를 깨달라며 청혼한다.

결혼식이 끝나고 간 신혼여행에서 그녀가 소리 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는 레이놀즈의 표정이 또다시 굳어진다. 여행 중 새해 전야에 춤을 추러 가자는 그녀의 제의를 거절하자, 그녀는 화가 나서 혼자 파티장에 가고, 그는 할 수 없이 따라가서 그녀를 데려온다.

런던으로 돌아온 그는 괴로워하며 누나 시릴에게, 알마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이며 그녀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다고 그녀는 자신을 망친다고 호소하는데 그 말을 알마도 밖에서 듣는다.


다시 숲 속으로 가서 독버섯을 따온 알마는 이번에는 대놓고 버섯에 버터를 듬뿍 넣고 볶아서 오믈렛을 만든다. 그녀가 눈으로 말한다. ‘나는 당신이 쓰러지길 바라요. 무방비 상태로 나의 도움을 기다리길 바라요...’ 그가 말로 대답한다. “쓰러지기 전 키스해 줘.” 그리고 독버섯 오믈렛을 기꺼이 먹는다.

부부와 누나가 그들의 아기 유모차를 밀며 걸어오고, 시릴이 아기를 돌보는 동안 둘이 산책을 하는 상상을 한다. 둘이 무도회에서 월츠를 추는 상상도 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회복한 레이놀즈가 말한다. “배고파”



일찍 아버지를 여읜 레이놀즈는 심리적으로 엄마에게 크게 의존한다. 엄마가 죽은 후에도 그는 사진이나 머리카락 등으로 늘 엄마를 소환한다. 누나 시릴도 그를 도와주는 존재이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나, 미약한 누나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자신의 내부에 있는 여성적 이미지와 비슷한 인물을 현실에서 만났을 때 그의 창작 의지는 샘솟는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아서, 어떤 여자를 보고 반해서 사랑하고, 예술로 표현하고, 싫증 나고, 헤어지는 패턴을 무한 반복한다. 그것은 그에게 저주와도 같은 운명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알마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만남도 이전의 패턴을 반복하는가 싶었지만, 알마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녀가 그의 규칙과 루틴에 어긋나서 짜증 나게 하지만, 그녀가 주는 매력은 그것을 넘어선다. 그녀를 통해 그의 예술은 구체화된다.

그의 무의식을 상징하는 솔기에는 엄마와 알마와 그가 받은 저주가 들어있다.

그가 번아웃되고 상상력이 고갈되고 아무 일도 못할 때 그녀의 역할은 빛난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예술 활동의 주기를 꿰뚫고 있다. 언제 그가 작품을 만들고 싶은지, 언제 그가 쉬어야 하는지, 어떻게 그가 자존심을 회복하는지를 그녀는 알고 있다.

그가 단단한 벽에 다다랐을 때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까지도 알고 있다. 경계를 없애는 마법의 물질로 그의 마음을 물렁하게 만들고 그녀가 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리셋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다른 존재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던 레이놀즈가 항복한다. 기꺼이 그녀의 레시피로 만든 마법을 받아들인다.


그가 두꺼운 자아의 벽을 무너뜨렸을 때 나타나는 특징은 식욕이다. 엄청난 식욕은, 까탈스럽게 깨작거리며 먹던 그가 사랑하는 여성을 만나고 상상력이 터져 나오고 엄청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이다. 다른 여성들에게서는 초기에만 가능했던 것이 알마에게서는 계속 반복된다. 그녀는 그의 진정한 짝인 것이다.

의상이란 조각의 천들을 대상의 몸에 맞게 이어 붙인 결과물이다. 당연히 조각을 이어 붙이는 데는 실을 사용한다. 조각을 이어 붙인 지도 모르게 실도 솔기도 안 보이고 처음부터 한 덩어리인 것으로 착각하게 했다면 그 옷은 걸작일 것이다. 팬텀 스레드란 비유는 레이놀즈가 옷을 너무도 잘 만드는 예술가라는 뜻이기도 하고, 그와 알마의 관계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라는 뜻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에게 아니마란 예술을 할 수 있도록 숨을 불어넣는 마음속의 여성적 존재이다. 레이놀즈에게는 엄마가 오랫동안 그 역할을 수행해 왔던 것 같다. 엄마가 죽은 후 누나 시릴이 그 역할을 대신해 왔지만 충분치 않았고, 때때로 만나는 여성들이 보조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알마는 레이놀즈가 평생 찾아 헤맸던 아니마의 이미지와 일치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그에게 예술적 상상력을 주고, 그가 기대어 의지하고 휴식할 수 있는 유일한 여성이다.

그는 자신을 지탱해주기도 하지만 한계를 만들기도 하는 자아의 경계를 기꺼이 포기하고, 그녀를 자신의 존재 안으로 받아들인다.

반복적으로 짧고 얕은 영감을 얻은 뒤 다시 피폐해지고 막다른 벽에 다다라서 더 이상 창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레이놀즈가 받은 저주를 깨는 주문은 오직 알마만이 외울 수 있다.

그는 기꺼이 알마에게 자신의 전 존재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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