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라이였던 한 남자가 죽었다. 죽기 전에 사무라이와 부인이 함께 가는 것을 스님이 목격했고 죽은 후에 산길을 지나가던 나무꾼이 시체를 발견하고 관아에 신고했다. 사무라이의 칼과 활을 가지고 있던 도둑이 잡혔고, 절에 숨어있던 부인도 찾았다. 스님, 나무꾼, 도적, 부인, 죽은 남자를 대변할 무당까지 모두 다섯 명이 관아에서 그들이 보고 겪은 것을 이야기하게 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이야기-
스님은 다른 마을로 가기 위해 산길을 가다가 부인을 말 태우고 가던 사무라이 부부를 보았다.
-나뭇꾼의 이야기-
나뭇꾼은 산길을 가다가 나뭇가지에 여자가 쓰는 긴 천이 달린 챙모자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더 가서 다른 소지품도 발견하고 다음에는 남자가 쓰러져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관아에 신고했다.
-도둑의 이야기-
길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사무라이 부부가 지나갔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와 여자의 매력적인 얼굴이 드러나서 여자를 빼앗을 마음을 먹게 되고, 산속으로 사무라이를 유인하여 묶어놓았다. 다음에는 남편이 뱀에 물렸다고 거짓말을 한 후 부인을 데리고 산속으로 들어왔다. 단검으로 격렬히 저항하는 부인을 겁탈하고 남편은 그대로 두고 부인만 데리고 오려고 하는데 여자가 두 남자를 두고는 살 수 없다며 남편을 죽여 달라고 했다. 그래서 도적은 남편을 묶은 줄을 풀고 칼을 주고는 용감한 결투 끝에 남편을 죽였고 그사이에 부인은 도망가는 바람에 찾을 수 없었다.
-부인의 이야기-
도둑이 남편이 뱀에 물렸다고 하여 따라갔더니 남편은 묶여있었고 격렬히 저항하였지만 그 앞에서 도둑에게 겁탈 당하였다. 도둑이 사라진 뒤 울면서 남편에게 다가갔는데 남편이 자신을 더러운 여자 보듯 차갑게 대하므로 단도로 남편을 풀어주며 자신을 죽여달라 소리 지르다가 기절하였고 깨어보니 남편이 가슴에 단도가 꽂힌 채 죽어있어서 자신도 도망갔다.
-남편 혼령(무당)의 이야기-
도둑의 꾐에 빠져 산속에 끌려와서 묶여있을 때 도둑이 아내까지 끌고 와서 자기 앞에서 겁탈하였는데 아내는 별로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 후 아내는 도둑에게 남편을 죽이고 가자고 하고 도둑이 이를 듣지 않고 모진 여자라고 욕하며 오히려 아내를 죽이려고 하였다. 도망간 아내를 쫓아가다가 놓치고 돌아온 도둑이 자기를 풀어주자 사무라이는 모욕감에 스스로를 단도로 찔러 자결했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 것일까?
같은 사건의 진술이 같은 듯하면서 묘하게 엇갈리지만 크게 다르지도 않다.
영화에서 사건의 진실은 영화의 편리한 장치인 전지적 시점을 가진 나무꾼을 통해 제공된다. 나무꾼은 어쩌다 보니 이들과 동선이 겹쳐 이들을 따라가서 모든 일을 보게 되었다.
-나무꾼이 본 실제 사건-
도둑이 거짓말로 사무라이를 속여 데려가서 묶어놓고 그의 아내도 데려와서 겁탈한 뒤 그녀에게 자신과 함께 가서 살자고 간청한다. 그러자 아내가 사무라이를 묶은 끈을 풀며 둘이 알아서 해결하라며 싸움을 종용한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모욕하며 도둑에게 여자를 그냥 줄테니 데려가 살라고 하자 도둑도 여자를 포기하려 한다. 그때 여자가 강한 남자라면 싸워 이겨 여자를 얻는 법이라며 두 사람의 싸움을 부추긴다. 그러자 도적이 관아에서 한 진술과는 달리 사무라이나 도적은 둘 다 겁도 많고 칼싸움도 제대로 못해서 치졸한 몸싸움을 했고, 심지어 사무라이는 마지막 위험한 순간에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한다. 사무라이를 죽인 도둑이 여자까지 죽이려고 하지만 지친 그는 도망치는 여자를 잡지 못하고 놓치게 되고 훔친 칼과 말을 가지고 가다가 포졸에게 잡히게 된다. 그리고 시체만 남은 현장에서 나뭇꾼은 값이 나가는 단도를 훔치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관아에 자초지종은 밝히지 않고 사람이 죽어있다고만 신고한다.
분명한 사실은 사무라이가 죽었고 여자는 겁탈 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왜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사건에 연루된 세 사람의 이야기와 입장이 다 다르다.
얼핏 사건의 얼개는 다 비슷하지만 살인의 의도와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은 모호하게 진술한다. 가장 중요한 문제인 누가 사무라이를 죽였는지가 엇갈린다. 흥미롭게 도적도, 부인도, 혼령도 자신이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한다. 얼핏 생각하면 자신이 안 죽였다고 해야 살인 혐의를 벗어서 유리할 것 같은데 모두 다 자기가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한다.
여기서 이 시대에는 살인보다 불명예가 더 치욕임을 알 수 있다. 유명한 도적은 살인 혐의를 벗는 것 보다는 자신이 얼마나 힘세고 용감했나를 밝혀야 하고, 부인은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너무나 노력했는데도 남편이 그녀를 멸시했음을 보여야 하며, 사무라이는 치욕을 당했을 때 스스로 명예롭게 자결했음을 알려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소문과 달리 겁 많고 싸움도 못하는 충동적인 도적과,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의 신의을 우습게 여기는 부인과, 말만 사무라이여서 칼싸움도 못하며 아내를 인간이 아닌 대상으로 생각하고 쉽게 버리는 남편이 각자 멋대로 편집한 이야기들을 영화는 보여준다. 거기에다 유일하게 진실을 아는 나무꾼은 돈이 필요해서 사무라이의 가슴에 박힌 단도를 빼서 훔쳤기 때문에 관아에서 입을 다문다.
현실에는 전지적 시점을 지닌 나뭇꾼이 없다. 도둑과 부인의 진술과 시체뿐이다. 누가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고, 어떤 부분을 은폐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가?
똑같은 사건을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각색해서 진술할 때 재판관, 또는 관객은 어떻게 진실을 찾아내는가? 영화에서는 죽은 남편 대신 무당을 등장시켜 혼백이라며 진술을 한다. 현대의 재판이라면 죽은 자는 무당의 입을 통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으로 말할 것이다. 시체를 자세히 살펴본다면 몸싸움한 흔적이 있는지, 장검에 찔렸는지 단도에 찔렸는지 알 수 있으므로 누가 거짓말했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실제로 누가 어떻게 사무라이를 죽였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관아에 끌려온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같은 일도 다르게 포장하고, 어떤 부분은 임의로 건너 뛰고, 사건을 자신의 가치관으로 해석할 뿐이다.
애초에 객관적인 진실 같은것은 없는지도 모른다
결국 같은 일을 사람마다 자신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따라 다르게 재구성하는 인간의 본성을 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