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컨택트>-필연의 바다

딸에게 바치는 헌사

by 윤병옥

언어체계가 다른 존재끼리 만나면 어떻게 서로 소통하는가?

호주에 간 사람들이 처음 보는 동물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원주민이 자기들의 언어로 “무슨 말이야?”라고 말한 것이 캥거루의 이름이 되었다는 교훈에서처럼, 오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상당한 기간 동안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상대방의 언어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는 길 밖에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다른 존재를 외계인으로 설정하지만 언어체계가 다른 어떤 이방인이어도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외계에서 온 생명체가 세계 12곳에 우주선을 세우고 지구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18시간마다 우주선의 문이 열고 커다란 유리벽을 경계로 지구인과 대면한다.

그들은 7개의 긴 다리를 가지고 있고, 문어와 같은 모양이고, 앞뒤가 없는 모든 방위의 시각과 운동성을 가지고 있다. 지구인들은 그들을 헵타포드라고 부른다.

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미국에서는 언어학자 루이스와 물리학자 이안이 파견된다. 이들은 소리와 문자를 가지고 있지만 소리는 해독이 불가능해서 루이스가 알파벳 문자로 ‘인류, 루이스, 먹다, 걷다’ 등의 간단한 단어를 써서 보여준다. 그들이 이에 대응하여 발에서 뿜는 먹물 같은 액체로 유리벽에 문자를 보여주는데 각각이 크기나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 모두 원형에 돌기가 있는 형태이다. 그들의 문자는 단어를 따로 쓰는 것이 아니라 원 하나가 문장이거나 절을 의미하는 완결된 구조이고 시제도 없다.

처음 보는 문자를 습득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국가 정보원에서 급하게 알아보고 싶은 것은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지구에 왔는가이다. 그들의 대답은 “무기를 주러 왔다.”이다. 이것을 듣고 세계는 난리가 나고 그들에게 대항하려 한다. 루이스는 무기라는 것에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이안은 다른 나라의 연구원들과 협조해야 한다고 하지만 세계 각국은 듣지 않고 서로 연락을 끊어버린다.

루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공부할수록 루이스에게는 환상이 보인다. 여자 아기를 낳고, 그 아이와 놀며 이야기하고, 아픈 아이를 간호하고, 그 아이를 잃는 장면을 본다.

중국과 러시아가 외계인과의 전쟁을 시작하려 하고 미국도 철수하려 하는데, 정보국의 의사를 거스르며 루이스가 우주선에 접근하여 올라가자 헵타포드는 루이스에게 그녀가 무기를 가질 것이며, 그것은 그녀가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녀가 시간을 열 것이라고 한다. 지구에까지 와서 소통하는 이유는 3000년 후에 자신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환상 속에서 현재로부터 18개월 후에 열리는 백악관 만찬에서 중국의 장군을 만나는데 그는 세계를 구한 루이스를 보고 싶어 왔다며 그녀에게 자신의 개인 전화번호와 자기 부인의 유언을 말해준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루이스는 캠프 철수 직전에 중국 장군에게 사적으로 전화해서 외계인의 메시지와, 자신이 미래를 안다는 증거로 부인의 유언을 말해주고, 이를 들은 중국 장군은 전쟁을 철회하고 세계와 협력하기로 한다.

우주선은 사라지고 문제가 해결된 후, 루이스와 이안은 사랑에 빠지는데 다시 미래를 본 루이스는 미래의 남편 이안이 아이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아이를 가진 자신을 원망하며 그녀를 떠날 것임을 안다. 그러나 미래를 알면서도 루이스는 그와의 사랑을 시작하고 아이를 가지기로 한다.



이 영화의 원작은 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작품에서 사용한 논거는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외국어를 배우는데 몰두하면 뇌회로가 재구성된다는 것으로, 언어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시간에 따라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에서 원인과 결과를 찾는 인과론적인 사고를 한다면, 헵타포드는 시작 전에 미리 결과를 보고 필연적인 최적의 경로를 찾는 목적론적인 사고를 한다.

같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빛이 공기 중에서 물속으로 들어갈 때 굴절하는 현상에 대해, 인간들은 매질에 따라 빛의 굴절율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인과론적으로 설명하지만, 목적론적 설명은 목적지에 최소한의 시간으로 도착할 수 있는 경로로 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지가 정해져 있을 때라야 적용할 수 있는 원리이다. 둘 다 똑같은 현상을 다른 방식이지만 맞게 설명하는 것이다.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면서 그들처럼 사고하게 된다. 따라서 인생을 통째로 보게 되어 미래까지 볼 수 있게 된다. 그들이 언어학자 루이스에게 자신들의 언어를 습득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미래를 보는 능력을 선물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무기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지구인에게 주려고 한 무기는 자신들의 언어를 배워서 미래를 볼수있게 하는 것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방식은 정해놓은 인생을 자유 의지 없이 강제로 걸어가게 하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그들의 동기가 역사와 일치하고 그것을 실연하는 것이 사는 것이라면 자유의지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알면 그것에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고,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마치 연극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결국 인생은 필연성의 바다에서 열심히 헤엄치는 것이다. 그래서 루이스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지만 기쁘게 그 길을 받아들인다.

소설의 제목에서의 ‘네 인생’이란 딸의 인생을 말한다.

딸이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유일한 존재였고 기쁨이었고, 딸의 삶은 끝났어도 그녀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모두 유한한 인생인데, 다소 짧다고 해서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딸의 모든 순간을 사랑했던 루이스는 끝을 알면서도 딸을 낳고, 사랑하고, 슬픔 속에서 딸을 보낸다. 그리고는 딸의 이야기를 세상을 떠난 그녀에게 헌사로 바친다. 부모의 사랑으로 그녀가 생긴 때부터, 그녀가 병으로 세상을 뜰 때까지의 이야기이다.(소설에서는 20대에 등반 사고로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죽음을 미리 안다는 면에서 마찬가지이다.)

언어가 사고하는 틀을 의미한다면, 세상에는 외계인이 아니어도 다른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은데, 결국 루이스와 이안도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고, 이안은 루이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떠난다고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언어로 생각하지 못하면 소통은 불가능하고 이별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루이스가 이안에게 만일 전생애를 볼수 있다면 삶을 바꾸겠냐고 물어보았을 때, 그는 당신을 만난 것이 외계인을 만난 것보다 놀라운 일이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소설이 언어가 인생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는 명제를 부각했다면, 영화는 루이스가 미래를 보는 능력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도 영향을 주고 해결하는 타임 리프 같은 에피소드를 넣었다. 또 외계인이 그저 관찰과 소통만을 위해 왔다는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미래에 도움을 받기 위해 지구를 방문했고 루이스라는 언어학자를 선택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선물로 주었다는 뉘앙스를 주었다. 영화적 흥미를 위해 어쩔 수 없었겠지만, 소설의 주제가 단순하면서도 철학적으로 더 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책 속에 나오는 외계인의 문자와 우주선을 시각적 이미지로 구체화시킨 감독의 능력은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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