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싱글 라이더>-너무 늦은 깨달음

모든 것을 후회한다

by 윤병옥

예쁜 아내와 토끼 같은 아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족을 호주로 보내고 뒷바라지하다가, 뒤늦게 가족을 만나러 떠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훈은 증권회사의 잘 나가는 지점장이다. 고객들도 그를 신뢰하고 실적도 좋아서 돈도 많이 벌었고 자신이 늘 딸렸던 영어 실력을 아들에게는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아 아내와 어린 아들을 호주로 유학 보낸다. 어린 아들은 타스마니아라는 곳에 놀러 왔다며 다른 가족과 바닷가에서 뛰어다니는 영상을 아빠에게 보내고, 아빠도 같이 오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회사는 부실채권을 안전 자산이라고 홍보하여 순진한 투자자들을 나락으로 빠트리고 도산한다. 그를 믿었던 고객들은 회사로 찾아와 눈물로 자신들이 어렵게 번 돈을 돌려달라고 호소하거나 그를 사기꾼이라며 폭행하기도 한다. 사장은 항의하는 재훈에게, 그도 알면서 진행시킨 거 아니었냐며 그를 공범 취급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재훈은 위스키와 정신과 약을 먹고, 아들이 우편으로 보낸 생일 축하 카드를 읽고, 컴퓨터에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을 구글 지도로 찾아보고 비행기표도 예약한다. 그리고 호주 집 주소를 볼펜으로 손등에 쓴다.


양복 차림으로 비행기를 타고 호주에 온 재훈은 손등의 주소를 보고 버스를 타고 아내와 아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찾아온다. 그가 뒷마당 쪽으로 가서 부엌문으로 접근하려는 순간 아내가 어떤 남자와 함께 대마초를 피우며 정신없이 웃고 있는 장면을 본다. 결국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사진으로 보았던 강아지 치치가 다가와 반기고 동네 할머니가 그를 수상하다는 듯 쏘아본다.

조금 후 다시 찾아간 집에서 그 남자와 그의 딸이 나오는 것을 본다.

다운타운의 국숫집에 멍하니 앉아있을 때 커다란 배낭을 멘 젊은 한국여자가 통화를 하다가 어떤 차에 타고 가는것을 보는데, 도착한 집에는 젊은 한국인들이 몇 명 술을 마시고 있고, 따라간 여자는 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조금 뒤 그 여자가 비틀거리며 국숫집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재훈이 부축해서 그녀가 묵고 있는 유스호스텔로 데려다주고 그도 거기에 머문다. 재훈을 믿는 진아라는 이름의 그 여자는 자신이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에 와서 2년간 고생해서 번 돈을 좋은 환율로 바꿔 주겠다고 속이는 나쁜 한국인들에게 빼앗겼다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말하지만, 그는 너무 좋은 거래에는 항상 거짓이 있다며 끝내 그 돈을 못 받을 것이니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다시 가족의 집에 찾아간 재훈은 비어있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아들의 방 사진액자에는 가족사진 외에도 호주남자와 그의 딸이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이 있어서 마치 그들이 가족같이 보이기도 한다. 아들의 노트에 적힌 아빠인 자신의 이름을 보고 그는 울컥한다. 아내의 방에는 한국에서는 버리겠다고 말하던 그녀의 전공이었던 바이올린을 연습한 흔적이 있고 그녀가 신청한 기술이민 신청서도 있었다. 그녀는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했고, 호주 교향악단의 오디션에 합격해서 취직하고 정착하려 하는 것이다.

질투심에 호주 남자를 뒤쫓던 재훈은 그 부녀가 방문한 병실에 찾아가서 그의 아내를 만나 서로 이야기한다. 그녀는 딸을 낳고 얼마 후에 사고가 난후부터 병원에 있었다며 남편이 재훈의 아내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가족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들의 관계를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재훈은 그들에게 화가 난다며 자신이 한 모든 일을 후회하며 특히 가족을 멀리 보낸 것을 후회한다고 말하고 뛰쳐나온다.

다시 집으로 찾아온 재훈은 현관이 열려있고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불안하여 동네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아들이 아파서 호주 남자가 아들을 안고 맨발로 병원에 뛰어갔다고 말해준다. 병원으로 달려간 재훈은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들을 보고 손을 잡는다. 아들이 아빠를 알아보고 둘은 애틋하게 대화한다. 집 앞에서 재훈은 아내가 호주 남자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키스하고 둘이 함께 집에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나중에 그 남자가 떠나고 재훈이 분노해서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는 침대에서 자고 있고 그 옆에는 호주 영주권 신청서가 있는데 재훈의 이름까지 들어있는 서류였다. 아내는 호주 남자가 아니라 재훈과의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재훈은 자신이 무언가 평소와 다른 상태임을 깨닫는다. 자신이 보고 대화하는 존재들에 대해 의문을 갖게되어 한국 범죄자들이 살던 집에 가보니 경찰이 와 있다. 진아는 그들이 살해해서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그도 진아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이다. 진아를 데리고 그곳에 가서 그녀가 살해 당한채 구덩이에 묻혀 있는 것을 보게하여 그녀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게 한다. 두사람을 따라다니던 강아지도 교통사고로 이미 죽은 강아지였고, 호주 남자의 아내도 코마 상태로 의식이 없는지 오래된 사람이었고, 아들도 아파서 의식이 없었을 때 대화한 것이었고, 동네 할머니도 죽어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영혼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는 재훈이 불안하여 아내는 한국 아파트 경비실에 부탁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게 한다. 그는 컴퓨터 책상에 앉아 호주에 있는 가족의 집을 검색하고,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주소를 손등에 적은 채 약물과다로 숨져 있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인 존재들은 혼자서 먼 길을 떠난다. 재훈은 아들이 함께 가고싶어 하던 타스마니아로 길을 떠난다. 계속 걷다가 더 이상 길이 없는 곳을 지나 바다에 다다른 재훈은 절벽 끝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흔히 사람이 죽기 직전, 그의 전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또 못다 한 이야기를 하러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게 신비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 재훈이 술과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약기운이 나타나기 전까지의 시간은 보통때의 감각이라면 아주 짧은 시간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시간의 흐름이 느려져서 엄청 긴 시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이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긴 시간인 것이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어릴 때 부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경제적 결핍을 자식에게는 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였을 것이다. 가족과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심지어는 가족을 보낸 호주에도 한번 가보지 못할 정도로 일만 하고 돈만 벌었다. 회사 사장의 말대로 그는 채권이 부실하다는 것을 짐작했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눈을 질끈 감고 그것을 고객들에게 팔고 거액의 월급을 챙겼다.

또한 아들이 타스마니아 바닷가에서 보낸 동영상 속의 호주 남자를 보고 그는 아내에 대해 불안했을 것이다. 그후 마음속에 있었던 아내에 대한 일말의 의심이 점점 커져갔었지만, 그는 죽어가면서 아내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아내의 일탈을 용서한다.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아빠가 옆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는 사과와 작별 인사와 축복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호주에서 사기를 당하고 죽은 진아를 돕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준 고객들에게 보내는 사과와 속죄의 비유이다.


그는 코마에 빠진 호주 남자의 아내에게 하는 말로 그의 후회를 구체화한다. 만일 시간을 다시 돌릴 기회가 온다면, 자신을 잃어가면서 부도덕하게 돈을 벌지도 않을 것이고 가족을 멀리 보내지도 않겠다고 한다. 좋은 일을 하면서 돈을 적게 벌더라도 가족들과 살 비비며 소박하고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법이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전제로 상상하는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돌이키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

어떤 시인의 말대로, 왜 꽃은 잘 안보이는 곳에 숨어 있어서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다가 내려갈 때만 보이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 꽃은 찾았는데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이 없다.

길다면 긴, 순간의 마음 여행을 마치고, 재훈은 혼자 먼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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