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인용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그는 이 문장을 왜 모든 동물이 가축화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비유로 인용한 것이지만, 행복에 대한 통찰로는 이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만큼 행복에 다다르려면 모든 필요조건이 다 갖춰져야 하니 과연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있기나 한 걸까?
행복 그 자체인 톰과 제리 부부와, 그 안에 들어가려고 무모한 노력을 하는 불행한 메리를 통해 행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의 전형이라고 보이는 두 사람이 있다.
지질학자이면서 회사에서 토목공사의 안전평가를 하는 남편 톰과, 병원의 심리상담사인 아내 제리 부부이다. 그들은 큰 부자는 아니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열심히 일도 하고, 아들을 사랑스럽게 키우고, 집을 아늑한 쉼터로 꾸미고, 근처 농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직접 가꾸고 수확해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며, 가까운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따뜻한 음식과 위로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행복한 사람이 가져야 할 모든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편, 제리가 근무하는 병원의 행정팀에서 근무하는 메리가 있다.
그녀는 성급하게 결혼해서 실패하고 경제적으로 간신히 견뎌내고 있는데, 늘 좋은 남자 만나기를 기다리지만 유부남같이 자격이 없는 남자만 만나서 실패를 거듭한다.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세들은 집의 정원은 엉망으로 가꾸지 않고, 퇴근해서 술집에서 한잔하고 누구라도 만날 거라는 기대를 하며 산다. 그녀가 좋아하고 의지하는 인물은 제리이다. 그녀는 제리의 모든 면이 부럽다. 제리가 자신을 초대해 주기만 기다리고, 그 집에 가서는 만취해서 하룻밤을 신세 지고 초라해져서 다음날 집에 가는 일이 20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따뜻한 봄날, 제리는 외로운 메리를 또 초대했다. 톰이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로 요리를 하고 제리는 맛을 보며 다정한 모습을 보인다. 둘은 문학적인 대화를 하고 톰은 날씬한 메리에게는 관심도 없고 뚱뚱한 제리의 뱃살을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메리는 제리에게 자조적으로 걱정거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언제든지 이야기해 달라고 하며, 누구나 대화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또한 저축해서 모은 돈으로 꿈에 그리던 빨간 자동차를 사려고 한다며 그러면 행복해질 거라고 한다.
그녀가 20년 전부터 보아왔던 제리의 아들 조이는 벌써 30살이 다 되었다. 성숙하고 행복한 부부아래서 자란 사람답게 그도 좋은 성품을 가졌으며 변호사로서 어려운 계층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해 더운 여름날, 켄은 기차를 타고 연신 먹어대며 톰의 집으로 오고 있다. 톰의 친구 켄은 어렸을 때는 외모도 출중하고 유쾌한 사람이었으나 아내와 헤어진 후 우울해져서 먹는 일에만 탐닉하여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정도의 거구가 되었다. 그런 켄을 톰은 매년 여름에 집으로 초대하여 먹이고 하소연도 들어주고, 아픈 아내가 있는 친구 잭까지 불러 함께 골프도 친다. 걸어서 배낭여행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 친구가 올 때 다른 사람들도 불러서 매년 여름 파티를 하는데, 메리도 초대했지만 새로 산 빨간 차를 타고 길을 헤매다 파티에 늦고, 들어와서는 눈치 없이 자신의 차에 대한 이야기를 장시간 늘어놓는다. 메리가 제리의 집 냉장고를 여니 자신의 집의 텅텅 빈 냉장고와는 대조적으로 먹을 것이 가득하다. 켄이 메리에게 호감을 갖지만 메리는 그가 너무나 싫다. 메리는 이제 장성한 제리의 아들 조이에게 관심을 가지며 추파를 보낸다.
가을이 되니, 톰과 제리의 농장에 수확할 작물이 많다. 메리를 초대하고 점심을 먹기로 한 날이었는데 농장에서 돌아와 보니 조이가 여자친구 케이티를 부모에게 소개하려고 데려와서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 부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케이티를 보고 그녀의 밝고 유머 있는 성격을 마음에 들어 한다.
그때 메리가 들어와서 조이를 보고 반가워하다가 여자친구를 보고 정색한다.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게 대하고 제리에게 그녀의 험담을 하기까지 한다. 식사 시간이 되자 또다시 자신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애물단지 자동차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다가 자신은 조이와 특별한 관계라고 강조한다. 조이와 제리가 그녀는 조이에게 이모 같은 존재라고 하며 선을 긋는다. 메리의 어른답지 못한 태도에 실망한 제리는 냉랭해져서 메리가 저녁을 먹지 않고 가겠다고 해도 붙잡지 않는다.
겨울이 오고 톰의 형수 린다가 죽는다. 그녀는 냉담한 남편과 말썽쟁이 아들을 먹여 살리느라 나이 들어서도 일을 하다가 어느 날 아침 돌연사한다. 그녀의 장례식을 위해 톰과 제리 가족이 먹을 것을 준비해서 형 집을 방문한다. 장례식이 끝난 후 형이 힘들까 봐 자신들의 집에 와서 당분간 지내라고 하며 집으로 형을 데려온다.
한동안 냉담하게 지냈던 메리가 추위에 덜덜 떨며 피폐해진 모습으로 제리의 집을 찾아오지만 톰과 제리는 농장에 갔고 집에는 톰의 형만 있다. 집으로 들어온 메리는 형에게 이 집은 평화롭다고 말하며 아기처럼 소파에 웅크리고 눕는다. 자신의 빨간 차가 또 사고가 나서 어제 폐차한 후 고철값 20파운드밖에 못 받았다며, 너무나 화가 나서 그 돈으로 술을 사서 다 마시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왔다고 한다.
이때 들어온 부부는 연락을 하고 와야 한다고 차갑게 이야기하지만 메리는 울면서 자기가 잘못했다고 제리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사과한다. 제리가 자신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실망한 것이라고 하고,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한다고 하면서 전문적인 상담을 권유하고,그녀를 안아준다.
조금 후에 조이와 여자 친구가 오고 톰과 제리 부부, 형, 메리는 함께 식사를 하며 톰과 제리가 처음에 어떻게 만났는지, 결혼 전에 어디로 여행을 다녔는지, 조이와 여자친구의 파리 여행 계획 등 즐거운 대화를 한다. 처음에는 추임새라도 조금 넣던 메리는 점점 눈빛이 흐려지고 대화 소리도 멀어지며 자기의 세계로 고립된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행복한 부부 톰과 제리가 모든 조건을 다 가졌다면, 그들 주변의 인물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톰의 형은 평생 아내와 아들에 무심하다가 아내를 허무하게 보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엇나간다.
친구 잭은 아내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다.
친구 켄은 술과 음식에 탐닉하고, 운동도 하지 않고, 사는 아파트도 엉망이고, 예술도 감상하지 않고, 고립될까 봐 회사도 그만두지 못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우리의 메리는 리스트가 끝이 없다. 외로우니 아무 남자나 사귀고, 자신의 주거 환경을 정리하지 않으며, 요리도 안 하고, 남의 상황이나 감정에 관심도 없고, 친구에게 과도하게 의지하며 그들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하며 선을 넘는다.
이들 모두는 톰과 제리 부부를 좋아하고 찾아온다. 부부가 이들을 초대하고 먹이고 위로한다.
어떻게 한쪽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결핍들이 있을까? 어쩌면 도달할 수 없는 행복에 대한 상징으로 톰과 제리 부부를 만들어 놓고, 현실에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불행을 묘사하려는 게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부가 자신들이 너무 행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죄책감이 든다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이 부부가 불행의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객관적인 결핍에 더해, 이 부부의 행복과의 대조로 인해 더 불행하다.
톰과 제리 부부는 속물도 아니고 성숙한 인격이어서 주변에 자신의 행복에 대해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주변 친구들은 그들을 보며 자신의 불행이 도드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행복의 기운은 자랑하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주변으로 뿜어 나오기 때문에 누구나 그들 옆에 있고 싶어 하지만 행복은 결코 전염되지 않는다. 그러니 메리가 그 가족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노력은 속절없다. 그것은 그들의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메리는 자신과 모습과 거울처럼 똑같은 켄이 호감을 표시하자 진저리를 친다. 자신의 불행에 그의 불행까지 더해질 거라는 생각에 그를 보는 것조차 끔찍한 것이다.
메리의 빨간 자동차는 행복의 상징이다. 그녀는 자동차만 있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 듯하다. 그러나 자신이 그 차를 타고 있는 모습만 상상할 뿐, 길도 잘 모르고, 주차도 잘 못하고, 그 차의 용량이 얼마인지, 보험료는 따로 얼마나 더 드는지, 고장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관리도 안 한다. 결국 차는 돈만 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사고를 낸 후 폐차하게 된다. 그녀는 행복을 위한 단계를 밟지 않는다
반면에 두 부부는 계절로 비유되는 인생을 꾸준히 가꾸며 살아왔고 겨울에 이르렀다. 겨울이 풍족하고 편안한것은 앞선 계절에 농장에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가꾸었기 때문이다. 직업을 갖고, 농장을 경작하고, 자식을 키우고, 배우자를 사랑하면서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톰과 제리가 결혼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서로 도우면서 더 행복해지기는 했을 것이다.) 아마도 톰이 다른 여자와, 또는 제리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어도, 또는 독신으로 살았어도 그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결국 행복은 다른 사람이(배우자라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이 행복한 사람이어서 행복한 가정도 만들었다고 하면 결정론이어서 씁쓸하지만, 슬프게도 행복은 개인의 차원이다. 남이 자신의 냉장고에 음식을 채워 넣어줄 수는 없듯이, 남이 자신의 마음을 행복으로 채워줄 수는 없다.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이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