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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Jun 29. 2023

한옥에 살고 싶다

공주 한옥마을

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주 어렸을 때에는 한옥에 살았었다.

안방과, 마루 건너 건넌방, 마당 건너 사랑방, 대문 입구의 문간방 구조의 그 당시 전형적인 주택구조였다. 물론 지금 보면 작은 집이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큰 공간으로 여겨졌었다. 오빠들이 있는 사랑방에 갈 때도, 부엌에 갈 때도, 신발을 신어야 했다.

어린 나를 위해 부모님은 마루 대들보에 긴 천으로 그네를 매어주셨다. 가벼운 나만 탈 수있는 전용 그네였다. 어른들이 밀어주면 마루를 가로질러 안방에서 건넌방까지 그네를 타고 날아다녔다. 작은 마당에는 강아지도 키웠고 수돗가도 있었고 장독대도 있었다.


그러다가 양옥구조의 주택으로 이사했을 때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대가 되었을 때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현대식 구조와 깨끗한 화장실과 따뜻한 물을 언제든 쓸 수 있어서 엄청 편리했다.

그리고는 내내 결혼 이후에도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는 점점 첨단 시설을 갖추었고 점점 높아졌다. 사람들은 전망이 좋다며 높은 층을 로열층이라고 선호하게 되었지만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높은 층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지표면은 현기증을 일으킨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저층으로 설계한 5층 아파트의 3층이다. 창에서 내다보면 땅과 화단이 어지럽지 않은 정도로 편안하게 보이고 샛시를 설치하지 않은 작은 베란다에 가끔 나가서 바람을 쐬거나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즐길 수 있어서 나름 만족한다.

어릴 때는 양옥과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을 바랐었는데 나이가 든 이제는 나지막한 한옥이 너무도 그리우니 참으로 아니러니이다.


요즘은 좋은 한옥에서 사는 것이 돈이 꽤 드는 일이다. 교통도 좋은 지점에 한옥을 짓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행 가서 숙박을 한옥에서 하는 것이다. 그것도 꿈만 꾸었는데, 내 생일이 되어 나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한옥에서 하룻밤 묵기로 마음먹었다. 북촌이나 서촌을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비싸고 예약도 다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주 한옥마을이 생각났지만 1박 여행으로는 좀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공주 부여에 여행 갔을 때 한옥마을을 본 게 기억나서 사이트에 접속을 해보니 다행히 그날 비어있는 집이  있었다.     

집에 처박혀서 책이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끌고 밖으로 나가 주는 고마운 사람은 남편이다. 국내건 해외건 그가 아니었으면 내가 가본 곳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여행을 가면 운전을 도맡아 하고 주변에 있는 유명한 곳을 검색해서 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나를 위한 생일 여행이고 여행의 목적은 한옥이라는 공간을 느끼러 가는 것이었다.


한옥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2~3인용이라 규모는 작았지만, 안방과 대청과 건넌방 구조에 작은 마당과 낮은 담장에 대문까지 갖춘 완전히 사생활을 보장하는 독채 구조였다.

문마다 전통 창살과 창호지를 발라 운치가 있었고 밖으로 난 창에는 미닫이와 여닫이의 이중구조의 창문이 있었다.

대청에는 마당 쪽은 전면이 개방되는 큰 문이 있었고, 반대편은 바닥에 앉으면 밖이 내다보이는 낮고 옆으로 긴 창이 있었다. 두 문을 다 열어놓으면 맞바람이 칠 수 있는 구조이다. 대청에 있으면 바람길 중간에 앉아있는 셈이니 밖은 더운 날씨인데도 아주 시원했다.

대청과 대문은 빗겨서 위치해서 우리가 마루에 앉아있는 것을 대문 밖의 사람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구조이다. 담장은 알맞게 낮아서 골목을 지나는 사람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으나 안에서 밖을 내다볼 때 맞은편 집의 멋진 기와지붕을 감상할 수 있었다.

담장과 가깝게 심은 나이 많은 수양버들이 대나무 발처럼 앞집과 차단 역할도 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창으로 긴 가지가 휘날리는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한옥의 백미는 차경이라고 하더니 밖의 경치까지 포함하여 집이 완성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었다.

높은 천장의 서까래가 보이는 대청에서 양쪽 문을 개방하고 바람길에 남편과 마주 앉아 맥주를 한잔 하며 대화하니 잠시 조선시대의 한량 양반이 된  듯한 느낌도 맛보았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마당이다. 아파트는 아무리 넓어도 거실과 복도를 지나서 있는 방들이 독립적일 수가 없다. 한옥은 작아도 신을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서 가는 사랑방이 심리적으로 저멀리 떨어진 공간이다. 또한 손바닥만 한 작은 마당이라도 내집에서 땅을 밟고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일은 특별하다. 미국의 넓은 잔디밭이 있는 정원도 장점이 많겠지만 유럽의 골목 여행에서 늘어선 멋진 건물들이 잘라낸 좁고 긴 하늘을 바라보는 경험처럼, 마당에 서서 한옥의 지붕이 둘러싸며 조각낸 쪽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일이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선조들의 지혜로 우리에게 알맞게 만들어진 한옥이 좋은 이유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인구문제나 경제적 한계로 모두가 한옥에 살며 즐길 수는 없지만, 가끔씩 한옥에 머무른다면 우리 안의 한옥 세포가 살아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이외에는 살지 않았는데도, 오랜만에 머물렀던 한옥에서 어릴 때 살던 집의 기억이 소환되었다.

삶이 피곤할 때, 나지막한 돌담장이 둘러싸고 기와 지붕을 얹은 한옥의 기억을 꺼내면, 언제고 잠시 따뜻한 위안을 받고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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