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찰스 디킨스도 빨간 모자가 너무 매력적이라고 하였고,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이 많았던 것은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부분을 빨간 모자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빵을 가지고 한눈팔지 말고 할머니 댁에 가라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빨간 모자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샛길로 빠지고 늑대를 만난다. 초록색 숲 속에서 뛰어다니는 빨간 모자를 상상해 보라. 보색의 대비와 생생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동화 ‘백설 공주’에서 백설 공주는 숯처럼 검은 머리와 흰 피부에, 피처럼 빨간 입술을 가졌다. 난쟁이들이 과거 백설 공주가 계모가 가져온 머리빗과 허리띠의 유혹에 빠져 위험에 처했을 때를 상기시키며 여러 번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설 공주는 계모가 가져온 사과의 잘 익은 빨간 부분을 참지 못하고 깨물어 먹고는 기절하여 깨어나지 못하다가 왕자를 만나 겨우 살아난다.창세기아담도, 그리스 신화속 아프로디테도, 빨간 사과는 못참는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공주는 왕이 외부와의 접촉을 모두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열여섯 생일에 성의 꼭대기 방에서 물레에 찔려 빨간 피를 흘리고 100년 동안의 잠에 빠져든다. 역시 왕자가 100년 후에 입맞춤으로 공주를 깨운다. 부모가 아무리 막아도 소녀의 성숙과 발달을 막을 수는 없다.
‘미녀와 야수’에서 미녀는 장에 다녀오는 아버지에게 하필 겨울에,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가져다 달라고 한다. 아버지는 야수의 성안으로 들어가 하얀 눈밭에 핀 빨간 장미를 꺾는 위험을 감수하다가 야수를 만나고 미녀를 야수에게 데려가는 계기가 된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나 현실에서도 빨강의 이미지는 강렬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는 가상현실에 들어갔을 때 거리에서 지나가는 많은 행인들 중 빨간 옷을 입은 미모의 여성에게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팔다가 적의 공격을 받는다. 또 파란 알약을 선택하는 사이퍼와는 달리 빨간 알약을 선택하여 자신의 참모습을 본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여주인공은 양서류 생물과 사랑을 시작한 후 빨간 구두를 신고 직장에 간다.
'안나 카레니나'에서 애인의 사랑을 의심하여 절망한 안나가 죽음을 결심하고 기차역에서 열차에 투신하려고 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들고 있는 빨간 핸드백을 보면서 잠시 뛰어들기를 주저하며 첫 번째 기차를 보낸다... 젊은 그녀는 빨강을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화장'에서 안성기는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느라 오랫동안 마음이 황폐해진 상태에서 여직원의 빨간 원피스를 떠올린다.
드라마 ‘도깨비’에서 여주인공은 이모의 구박을 받으며 사는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늘 빨간 목도리를 하고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다.
의사들 중에서 심장외과를 지원하는 사람들은 학생 시절 수술을 참관했을 때 뛰고 있는 빨간 심장을 보고 매혹당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다른 장기와 달리 핵심 기관인 심장이 멈추면 사람은 즉시 죽는다.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에는 빨강의 이미지로 표현되는 부분이 들어있다.
충동이나 본능이라고 해도 좋고 에너지나 열정이라고 할 수도 있고 프로이트식으로 ‘이드’라고 해도 좋다. 삶의 액센트이다.
또 빨강은 성숙을 의미하기도 한다. 빨간 모자처럼 너무 이르면 위험에 빠지기도 하고, 잠자는 숲 속의 미녀나 백설 공주처럼 부모가 억지로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발달 단계이다. 미녀처럼 위험을 자초해서 야수에게로 가는 계기를 만들어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빨강을 억압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도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다. 결국 사람들은 언젠가 지루한 흑백 영화 같은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하던 페르소나를 벗고 본색을 드러내게 되어있다.(본색은 상투적 표현에서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자신의 '진짜' 색이라는 중립적인뜻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