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아침의 커피 한잔은 정신을 깨우고 하루를 열게 해 준다. 오전에 집중해서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노트북을 싸 들고 카페에 가서 마시는 커피도 좋아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커피도 좋다. 그렇다고 세심한 커피 취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너무 진하게 로스팅이 되지 않은 것으로 약간의 산미가 있으면 된다.
문제는 내가 카페인에 민감해서 오후에 마시면 밤에 잠을 못 자고, 많이 마시면 심장이 뛰고 손이 떨리고 힘줄이 불거진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흥분되어 아무 일도 못한다.
스스로를 아니까 시간과 분량을 잘 정해서 마신다. 카페에 가는 날은 꾹 참았다가 가서 한잔 마시고, 집에서 마시는 날은 아침 일찍 만들어서 조금씩 홀짝홀짝 맛을 음미해 가며 아껴서 먹는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오후에도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초기에는 큰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만 팔던 디카페인 커피가 대부분의 카페에서도 등장하게 되었고, 집에서 먹는 캡슐 커피도 디카페인 제품이 괜찮게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오후에도 부담 없이 디카페인 커피를 한잔 더 마신다.
커피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기술은 여러 가지이다.
오래전에는 유기용매를 이용하여 카페인을 추출해서 제거했는데 원두에 용매가 소량 남고그당시는 벤젠 같은 1급 발암물질을 이용하기도 해서 유해하다고 판정이 났다. 지금은 무해한 용매를 쓰고 있고 그나마 요즘은 많이 쓰지 않는 기술이다.
다음은 스위스에서 개발한 뜨거운 물을 이용하는 방법인데, 원두를 뜨거운 물에 넣고 끓인 후 카페인이 녹아 나오면 그 물을 탄소필터를 사용하여 카페인을 걸러내고 나머지 물은 다시 원두에 흡수시키는 방법이다.(고비용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우리나라에서 많이 쓰는 방법으로 이산화탄소를 초임계상태로 만들어 뜨거운 물에 불린 원두에 고압으로 넣어주는 방법인데 유동체인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 탄소가 원두에 침투하여 카페인을 녹이고 다시 압력을 낮추면 기체로 날아가게 되어 카페인이 제거되는 방법이다. 초임계 상태의 이산화탄소는 낮은 분자량의 비극성 물질인 카페인은 잘 용해하고 커피 향을 내는 물질인 극성 물질은 적게 용해하므로 향은 놔두고 카페인만 제거한다.
기술이 발달해서인지 초기에 먹었던 디카페인 커피는 뭔가 밍밍한 맛이었는데 요즘은 보통 커피와 맛과 향이 거의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어떤 공정으로 만들어도 카페인을 100% 제거할 수는 없다. 나라마다 기준은 다르다는데 보통 97%정도 제거하며 우리나라는 90% 이상 제거하면 디카페인으로 인정해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디카페인 커피라도라도 먹으면 졸음이 좀 가시고 정신도 조금나는약한카페인효과가나타난다.
또 지방이 많은 원두 종류가 향을 더 보존하기가 좋아서 디카페인 커피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래서 고지혈증 환자는 디카페인 커피가 해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기술의 발달로 커피는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민감한 나 같은 사람들도 편하게 커피를 마시는 시대가 되어서 좋다. (물론 공정에 탄소 에너지를 많이 쓸 테니 지구에는 안 좋은 일이겠다. 커피를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 거기에 또 카페인까지 제거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든다고 하니... 커피를 마시고 생긴 힘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결과적으로 엔트로피를 많이 늘리지는 않을거라는 엉뚱한 변명을 해본다.)
내가 집에서 아이스커피 만들어 먹는 방법을 공유하려고 한다. 카페에서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표준 사이즈에 에스프레소를 2샷 넣는다. 약하게 먹는다고 샷을 줄이면 밍밍하고 간이 안 맞는다. 그러니 카페인이 신경 쓰인다면 반반 커피를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디카페인을 반 섞는 것이다. 1샷은 카페인, 1샷은 디카페인을 넣고 얼음을 듬뿍 넣고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안전하게 여름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가장 순수한 맛이다.
다음은 아이스 라테인데, 이것도 나같이 우유를 먹으면 배 아픈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물론 스타벅스에서는 저지방우유나 무지방우유를 선택할수 있지만 일반 카페에서는 우유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그래서여기서는 블루 보틀의 메뉴를 따라 해 보았다. 1샷은 디카페인으로, 1샷은 카페인 들은 걸로 반반씩 넣고 우유 대신 오트 우유를 넣고 얼음을 넣는다. 그러면 얼추 라테 맛이 나고 곡물 덕분에 든든하기까지 하다. 두 샷 다 디카페인으로 넣어도 좋다.
디카페 반, 아이스 오트 라테
인스턴트커피도 아이스커피에 적합하다. 손쉽게 기운 내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함께 놀러 갈 때마다 맛있는 아이스커피를 슬러시처럼 얼려오던 친한 친구 생각이 난다. 그러나 인스턴트커피를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니, 약간의 절충을 한다. 보통 커피믹스 한 봉지에 디카페인 카누 한 봉지를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 넣고 녹인 후 얼음을 넣는다. 덜 달고 크림도 반이고 카페인도 약해서 죄책감이 좀 줄어든다.
디카페 반, 인스턴트 아이스 커피
위의 모든 방법은 디카페인 커피를 반 섞는 것이다. 카페인에 민감해서 쓰는 절충안이다. 확실히 쨍하고 정신이확 드는 악마의 맛은 아니다. 그래도 카페인의 부작용에서는 벗어나면서도 거의 오리지널의 맛과 비슷한커피를 즐길 수 있다.
올여름이 아주 더울 거라고 하는데, 나는 이 방법으로 오전 오후 두 잔을 만들어 먹으며 버티고 살아남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