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스등>-가스라이팅의 의미

남이 자신의 인생을 휘두르게 두지 말라

by 윤병옥

‘가스라이팅’이란 용어가 주변에서 많이 들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하던 말인데 요즘은 흔히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옛날에는 오히려 남의 마음을 ‘조종한다’고 표현했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그 말 대신 이것이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그 용어가 유래된 영화가 바로 ‘가스등’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어떤 관계가 이런 용어를 탄생시키게 했는지 궁금해서 보았는데, 옛날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내용도 재미있고, 전성기 시절 잉그리드 버그만의 미모도 볼 수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엄마를 잃은 소녀 폴라는 유명 성악가인 이모 앨리스와 함께 런던 쏜튼 광장 앞의 저택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강도가 침입하여 이모를 죽이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녀는 나폴리에 사는 이모의 성악 선생님 집에 보내지게 된다. 그녀는 수년 동안 그에게 성악 레슨을 받지만 이모만큼의 재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녀는 얼마 전 들어온 반주자 안톤과 사랑에 빠져 선생님께 성악을 그만두고 떠나겠다고 한다. 그의 청혼을 받고 그녀는 파리에서 신혼을 시작하고 싶지만, 안톤은 런던 광장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하고, 폴라는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과거 이모가 죽은 트라우마를 이겨보려고 결심하고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간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에는 이모의 물건들이 그대로 있었고 그녀는 그때의 비극을 떠올린다. 안톤은 이모를 생각나게 하는 것들은 모두 다락방으로 옮기고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꾸미자고 하며 그녀를 달랜다.

신혼집에서 남편은 청력이 안 좋은 요리사 엘리자베스와 자유분방한 가정부 낸시를 고용하는데, 그는 그들에게 안주인 폴라가 예민하고 아프니 그녀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한다. 결혼한 지 3개월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그들은 외출하고 그는 집안 대대로 내려온 엄마의 브로치를 그녀에게 선물한다. 폴라가 좋아하며 당장 옷에 꽂으려고 하자, 그는 핀이 약하니 나중에 튼튼하게 보수한 다음 착장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가 무엇이든 잘 잃어버리니 그녀의 핸드백 주머니에 브로치를 잘 보관하라고 하며 넣어준다. 밖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폴라가 우연히 핸드백 안을 보니 브로치가 없어졌다! 안톤이 브로치를 고쳐올 테니 꺼내어 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잃어버렸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기억력이 의심스럽다고 한탄한다.

거리에서 부부를 본 경찰 브라이언은 자신이 어릴 때 좋아하던 가수 앨리스와 너무나 닮은 아름다운 조카 폴라를 보고 놀라서 그들을 좇는다. 그들의 집 앞에 갔을 때 이웃에게서 그들이 외출도 안 하고, 손님도 안 부르고 부인이 외출하려고 하면 가정부가 감시한다는 말을 듣는다. 경찰서에 들어가 과거 앨리스 살인사건 서류를 다시 본 브라이언은, 앨리스가 외국 왕실의 귀족에게 귀한 보석을 받았는데 그것들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그 집의 동태를 감시하고자 그 근처를 순찰하는 경관을 아는 사람으로 심는다.

남편 안톤은 마치 예전에 약속했던 것처럼 말하며 갑자기 오페라에 가자고 하고, 폴라가 좋아하며 외출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벽에 건 그림이 없어졌다며 그녀에게 어디에 숨겼냐고 다그친다. 조금 뒤 난간에서 그림이 발견되자 오페라에 가기에는 그녀의 심리 상태가 안 좋다며 취소하겠다고 한다. 또한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집은 집중이 되지 않아 외부의 사무실에서 작업해야 한다며 밤에 외출을 한다.


자신과 같이 있어 달라는 부탁을 뿌리치고 밤에 그가 나가면 언제나 천장에서 쿵쿵 소리가 들리고 그녀 방의 가스등 불빛이 흐려진다. 남편에게 말하니 그는 그녀가 있지도 않은 소리와 환각을 본다고 하고, 가정부를 불러 호소해 보지만 청력이 안 좋은 요리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고 가스등은 가스관을 나누어 쓰니 가끔씩 그럴 수도 있다는 답변만 돌아온다.

얼마 뒤 그녀가 어릴 때 친하게 지냈던 지역 유지의 집에서 음악회 초청장이 오고 그녀는 가고 싶지만, 남편은 자기가 벌써 아내가 아파서 못간다는 거절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혼자라도 가겠다고 하니 그가 당황해하며 같이 동행하겠다고 한다. 음악회에는 브라이언도 있었다. 음악을 감상하던 중 안톤이 갑자기 자신의 시계가 없어졌다며 폴라를 쳐다본다. 결국 폴라는 이번에도 자신이 시계를 훔쳤는데 잊어버렸다고 생각하여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키고 거기에 있던 손님들도 그 광경을 본다.

집에 돌아와서 안톤은 폴라에게 그녀의 엄마도 정신병원에서 죽었으니 너도 그럴 소지가 있고, 늘 없는 것을 있다고 환각을 이야기하니 이제는 전문의사 2명을 불러야 할 때라고 소리친다.

브라이언은 자신이 심어놓은 경관으로부터 가정부가 폴라가 앞으로 오랫동안 어디에 갈 거라고 남편이 말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안톤을 미행한 브라이언은 그가 이웃의 빈집의 지붕을 통해 자기 집 다락방에 침입한다는 것을 알아낸다. 위험을 감지한 브라이언은 안톤이 밤에 외출했을 때 폴라를 방문한다. 그리고 진짜 가스등 불빛이 흐려지고 천장에서 발소리가 난다는 것을 확인한다. 폴라는 자신이 본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제야 안도한다. 그들은 그의 방을 뒤져서 과거 이모에게 사건 직전 어떤 사람이 보낸 편지의 필적과 음악회에 보낸 거절편지의 남편의 필적이 똑같다는 것을 밝혀낸다. 결국 안톤은 이모의 보석을 노리고 그녀를 죽였고, 보석을 못 찾자 조카인 폴라에게 접근해서 결혼한 뒤 이모의 물건을 뒤져 보석을 찾아내려 한 것이었다. 폴라를 ‘계획적으로 조금씩 미쳐가도록 해서’ 정신병원에 처넣고, 집을 차지한 뒤 마음껏 집안을 뒤져서 보석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폴라는 이 모든 것을 믿고 싶지 않다. 이때 브라이언이 말한다.

“당신 인생은 당신에게 달려있어요.”

결국 다락방에서 보석을 찾은 안톤이 집으로 내려오고, 뒤따르던 브라이언이 그를 체포한다. 안톤은 브라이언이 꾸민 일이라며 끝까지 폴라를 붙잡고 자신을 풀어달라고 하지만, 다락방 서랍에서 그녀가 잃어버렸다던 그가 준 브로치까지 나오자 “나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숨기고, 기억을 못 하는 미친 여자이기 때문에 남편이 끌려가도 기쁘다”라며 나가버린다.

안톤은 경찰에게 끌려가고, 폴라는 이제 자신의 집에서 두발을 딛고 우뚝 서서 밖을 바라보며, 브라이언에게 내일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한다.



누구나 모르는 엉뚱한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기와 친밀한 사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귀담아듣고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한다.

건강한 관계의 경우 이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지만, 관계에서 한쪽이 너무 지배적이거나 다른 한쪽이 너무 심약한 경우는 문제가 된다. 영화에서처럼 한쪽이 상대방을 이용할 목적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요즘 문제가 되는 가스라이팅의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 타인보다는 배우자나 애인이나 부모 같은 제일 가까운 사람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은 사랑을 가장하여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조작하고 그들 스스로가 판단력이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이 충분히 무기력해졌을 때 그들을 조종하고 지배한다.


이 용어는 미국의 심리학자 로빈 스턴이 자신의 저서'그것은 사랑이 아니다'에서 이런 상황을 영화 ‘가스등’에 빗대어 ‘가스등 효과’라고 명명하면서 쓰이게 되었다.

그는 가스라이팅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한다.

첫째,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둘째, 상대방의 기억을 왜곡시킨다.

셋째, 상대방을 주위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킨다.

넷째, 스스로의 생각이 잘 못되었다고 믿게 한다.

주변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많이 본 것 같다. 부부나 연인관계에서는 가해자가 남자인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남자인 것도 아니다. 연예인 중에 여자친구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같이 출연하는 배우들에게 예의 없이 군 남자 배우의 사례도 있었고, 엄마가 끊임없이 자식에게 “너는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라고 가스라이팅 하며 독립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남자가 물리적인 힘까지 행사하며 가스라이팅하는 경우에, 그 영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 영화에서 가정부인 낸시는 일이 끝난 후의 시간을 주도적으로 보내며 자신은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돌본다고 말하는 반면, 여자 주인공은 부자이고 집도 자기 것인데 남편 눈치를 보며 외출도 못한다. 그가 비난을 하면 그가 옳은지의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 자신이 잘못했을 거라고 치부한다. 자존감으로 치면 가정부는 당당한 반면, 폴라는 바닥이다.

상대방을 믿고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심리적,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며 상대방을 무시하고 이용하려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우선 스스로가 독립적이어야 하고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가해자들은 독립적이지 못하고 자존감이 없는 사람을 타겟으로 삼아 가스라이팅 한다. 그러나 브라이언이 말했듯이, 그녀의 인생은 남편이 아니라 본인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은 자기것이지 남편이나 부모나 직장상사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해야 다음 단계인 진정한 사랑도 할 수 있다.

폴라가 자신안에 그림자로 억압되었던 독립적인 마음을 꺼낸다. 엔딩에서 남편을 쫓아내고 자신의 집에 당당하게 선 폴라는 대등하게 브라이언과 대화하기로 한다.

사랑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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