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은 만화까지 포함하면 실로 많은 작품이 있다. 영화만 해도 샘 레이미가 제작한 스파이더맨 3부작이 있고,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부작이 있고, 톰 홀랜드가 주연한 3부작이 있어서 총 8개의 스파이더맨을 보았다.(팬들은 샘스파, 어스파, 홈스파라고 부른다.)
마지막에 나온 ‘노 웨이 홈’은 멀티버스를 다루지만, 평행 우주가 세 명의 배우가 주연한 각기 다른 영화의 세계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다른 영화에서 다룬 평행 우주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우주에는 각 영화에 출연하는 캐릭터 외에 그들을 사랑하는 팬덤들도 있다. 그들을 한 시공간에 불러 모아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큰 재미가 있다.
세 명 중 어떤 스파이더맨을 사랑하는가, 그들의 세계는 서로 어떻게 비슷하고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을 비교하면서 보면 재미있는 것 같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편에서 악당 미스테리오가 죽으면서 피터 파커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을 대중에게 폭로하는 바람에, 영웅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익명성’이 훼손된다. 그뿐 아니라 가까운 친구들이 그의 친구라는 이유 하나로 MIT 입학을 거절당한다. 미안해진 피터는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찾아가 과거로 가서 미스테리오가 그 말을 못 하게 막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이제는 타임 스톤이 없어서 과거로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망각 주문을 해서 모든 사람들이 피터를 잊게 만들 수는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하려는 순간, 피터는 숙모와 여자 친구와 절친이 자신을 잊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들을 제외해 달라고 해서 박사는 주문을 여러 번 수정한다. 이렇게 꼬인 주문은 평행 우주의 경계를 열어서 피터를 아는 다른 세계의 인물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세 세계의 빌런들이 들어온다. 첫 시즌의 그린 고블린과 닥터 옥토퍼스, 샌드맨, 두 번째 시즌의 리저드와 일렉트로가 현실로 들어온다. 그들은 과학자여서 실험을 하다가, 또는 평범한 사람이 우연한 사고로 특이한 능력을 갖게 된 자들이다. 위기임을 직감한 닥터 스트레인지는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다시 그들의 세계로 보내려 하지만, 피터는 그들이 자신의 우주로 가면 죽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을 치료하고 살려서 보내야 한다고 반대한다. 여기에는 숙모 메이의 누구에게나 두 번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가치관이 주입되어 있다.
마법사의 자질을 가진 친구 네드가 피터를 부르며 찾자 다른 평행세계의 문이 열리고 그곳의 스파이더맨인 두 명의 피터까지 들어와서 현실에는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존재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 협력해서 악당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기로 한다.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백신과 혈청을 함께 개발하지만, 본색을 드러낸 그린 고블린이 숙모 메이를 해치고, 피터는 자신이 어떤 결과가 올지도 모르면서 그들을 자기의 세계로 보내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복수심에 불탄다. 친구들과 다른 피터들은 피터 3을 찾아와서 위로하며 빌런들을 자유의 여신상에 모두 모아 치료하고 돌려보내자고 한다. 그들은 서로 협력하며 그들과 싸우는데 그 와중에 고블린의 공격으로 여자 친구 MJ가 추락하게 되고 피터 2가 그녀를 구출한다. 또한 싸우다가 고블린이 쓰러졌을 때 복수심에 불타는 피터 3가 그를 보드로 찌르려는 순간, 피터 1이 와서 그를 말린다. 그리고 혈청을 맞은 고블린은 인간 오스본으로 돌아가며 다시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
빌런들을 다 물리치지만 잘못된 주문으로 평행세계에서 피터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몰려오는 위기를 맞고, 피터는 이번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모르게 하는 원래의 주문을 해달라고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부탁하고 그 위기를 넘긴다.
모두 자신들의 세계로 돌아가고, 아무도 피터를 모르는 현실 세계에서 그는 여자 친구를 찾아가서 인사를 하지만 그녀는 그를 못 알아보고, 피터는 낯선 셋방에서 어디선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 생기자 다시 마스크를 쓰고 출동한다.
나는 나이가 있으니 당연히 처음에 본 샘 레이미 감독이 만든 스파이더맨이 재미있는데, 다른 세대나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시리즈를 더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역시 첫사랑이 무섭다) 물론 나는 모든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나올때마다 다 보았다.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는 영웅이지만, 10대 청소년이고 능력은 있으나 미숙한 캐릭터라서 그가 사고 치고 좌충우돌 수습해 가는 과정이 큰 매력 중의 하나이다. 영화는 스토리를 위해 그가 거미에게 물려서 특이한 능력을 가지게 설정하지만, 그것을 비유로 본다면 소년이 부모에게 의존하다가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면서 독립해 가는 성장 스토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그가 혼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선배들과 어른들이 도움을 준다. 그러나 결국 성숙하다는 것은 어떤 일을 ‘혼자’ 감당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숙모의 죽음으로 비유되는 부모와의 이별이 인생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이고, 사랑도 스파이더맨이라는 자신의 업적에서 벗어나서 본연의 존재로 여자 친구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뜻이다. MJ는 피터를 좋아하지만 그가 스파이더맨이라는 것이 그것에 영향을 준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도 좋아해야 사랑이기 때문에 그는 그저 인간 피터로서 다시 그녀와의 관계를 리셋해야 한다. 그러니 영웅으로서도, 사랑에서도 스파이더맨의 익명성은 꼭 필요하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은 멋진 경험이었고 이것은 각각의 팬덤과 다른 세대를 통합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그들은 같은 듯 다르다. 그들이 입은 코스튬도 모양과 기능이 다르고, 거미줄을 발사하는 방식도 다르고, 잃게 되는 가족도 다르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찾아가는 장소도 다르다. 그들은 서로에게 선후배일 수도 있고, 어쩌면 동일인의 다른 시간대의 모습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든 피터는 어린 피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실수하지 않게 도와준다. 또 그들도 어린 피터를 보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한다. 피터 1은 피터 3가 고블린을 죽이지 않게 도와주고, 피터 2는 피터 3의 여자친구를 살리면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난다.
또한 빌런들을 변하지 않는, 타고난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계기로 병이 든 존재들이다. 치료하면 고칠수 있고 제 2의 기회를 가질수도 있다. 여기서 나아가 모든 사람들도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피터도 마찬가지이다. 첫 시즌의 세 번째 작품에서도 다크한 피터가 나오지만, 여기서도 빌런들의 대사에서 피터의 억압된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 특히 고블린과 닥터 스트레인지의 대사는 결국 어른이 된 피터의 생각이다. 그들은 미성숙하고 통합되지 않은 피터에게 선택을 회피하며 모든 것을 가지려는 태도와, 자신의 행동이 나중에는 큰 대가를 치를 거라는 것과, 그가 모든 것을 고쳐주고 개입하려고 하는 태도를 지적한다.
스파이더맨은 정의감이 넘치지만 아직 미성숙한 소년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부를지 생각하지 않는다. 가까운 가족의 죽음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그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교훈을 얻는다. 이제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에게는 무조건 따라야 할 부모가 없다. 이제 돌아갈 '부모가 기다리는 따뜻한 집'은 없다. 그래서 이번편의 제목이 ‘노 웨이 홈'이다.
스파이더맨과 지면에 발이 닿지 않아 불안정하고 울렁거리는 짜릿한 활공을 함께 하며 잠시 지난날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갔던 관객들은,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피터를 지켜보면서 기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저린 묘한 느낌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