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보면 유독 감정 표현이 서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비율로 보자면 남자가 많은 것 같다.
이 영화의 주인공도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한 아내와 살고 있지만, 아내는 남편과 단둘이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데도 그는 무심하고 표현에 인색하다. 그렇다고 아내를 싫어하거나 싫증이 난 것도 아니다. 그도 아내와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은데도 사랑을 받기만 할 뿐 표현할 줄을 모른다. 아내는 지쳐가고 점점 힘들어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내인 줄리아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둘은 출근 중이었다.
줄리아가 냉장고에서 물이 샌 지 오래되었다며 시아버지가 선물한 공구함도 있는데 고쳐주면 안 되냐고 하자 데이비스는 몰랐다고 한다. 무심한 남편에 짜증을 내며 줄리아가 “내 의자만 아니면 내 문제 아니다 이거지?”라고 말하는 순간, 운전석 쪽으로 다른 차가 와서 충돌한다.
급히 병원으로 왔으나 조수석 쪽의 데이비스는 멀쩡한 반면 줄리아는 죽고 만다.
병원 대기실에 있던 그가 자판기에 돈을 넣고 초콜릿을 누르지만 오작동으로 나오지 않는다. 직원에게 물으니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니 자판기 회사에 연락하라고 한다.
회사의 사장이기도 한 장인이 자기도 슬프지만 사위도 슬플 거라고 생각해서 서로 위로도 하고 딸의 보험금으로 장학금 재단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술집으로 부르는데, 장인이 이 집은 술 값이 왜 비싼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는 한참 후에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 집은 분위기 때문에 비싼 거라고 사무적으로 대답한다.
다음날 그는 태연히 회사에 나와서 업무를 보아서 다른 사람들을 당황시킨다. 장례식이 열리고 양가 부모들과 친지들이 모여서 슬퍼하지만, 데이비스는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는다. 그날 밤, 그는 자판기 회사에 귀사의 자판기가 그의 초콜릿을 내놓지 않았다며 항의 편지를 쓰고 거기에다 자신의 아내가 사고로 죽었다는 사연도 주절이 주절이 넣는다. 매일 한통씩 장문의 편지를 써서 그 회사에 계속 보낸다.
그가 집에서 아내가 고쳐달라던 냉장고를 보고 열어보니 정말 물이 새고 있다. 장인이 그에게 무엇을 고치려면 다 분해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한 말이 생각나서 냉장고를 다 뜯어보지만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고 결국 해체한 채로 놔둔다. 그때 자판기 회사 여직원캐런이 새벽 두 시인데도 그에게 전화를 하고 그의 편지를 울면서 읽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가 편지한 이유가 초콜릿값을 환불받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는 그녀의 회사에 찾아가 그녀와 계속 연락하고 만나면서 가슴속의 말을 다 한다.
데이비스의 기행은 계속된다. 회사에서 회의 중에 엉뚱한 말을 하고, 회사 화장실 칸막이를 부수고, 통근 기차의 옆에 앉아있는 낯선 남자에게 자기는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길을 지나가다가 집을 부수는 공사 현장에 가서 자신도 철거작업을 하게 해 달라며 인부들에게 오히려 돈을 주고 쉬게 하면서 대신 망치로 건물을 때려 부순다. 가슴에 감각이 없다며 병원에 가서 진찰도 받는다.
급기야는 도구를 사다가 자신의 집도 부수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아내와의 침실만 남았는데 아내와의결혼도 해체해서 보겠다며 아내의 화장대를 부순다. 거기서 봉투가 나왔는데 그 안에는 자신은 본 적이 없는, 줄리아가 임신해서 찍은 초음파 사진이 들어있었다.
아내의 이름으로 된 장학재단 발단 파티에 캐런을 데려온 데이비스는 장인의 분노를 사고, 그도 왜 아내의 임신 사실을 자신만 몰랐냐고 따진다. 장모는 딸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중절 수술을 했다고 말하면서 딸이 외롭게 살다가 빨리 죽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아이를 낳게 할 걸 그랬다고 소리친다.
그는 여러 가지 해체를 하면서 아내가 자신을 사랑했고,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외로웠는지 깨달으며 아내와의 소소한 일상을 끄집어낸다. 자신을 바라보던 눈길, 포스트잇에 장난스럽게 써서 붙여놓은 글귀들을 떠올린다. 냉장고 안에 붙어있던 “바쁜 척하지 말고 나 좀 고쳐주지?”, 차의 선바이저 뒤에 붙어있던 “비가 오면 안보이겠지만 해가 뜨면 내가 생각날걸?”의 쪽지를 보며 드디어 그가 울음을 터트린다.
단단히 화가 난 장인을 불러내서 그도 줄리아를 사랑했다며, 그녀에게 재단도 좋지만 그녀가 교육해 왔던 장애인들을 위한 놀이시설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자 장인의 마음도 풀린다. 그가 구입한 회전목마에 장애아이들과 가족들이 올라타고 즐거워하는 도중, 줄리아도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환상을 언뜻 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펑펑 울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슬픈 감정을 이야기하며 슬픔을 나누어야 하는데 그는 그럴 줄을 모른다. 주인공은 도대체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무엇이든 고치려면 분해해서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수리해서 다시 끼워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닥치는 대로 해체한다. 냉장고, 카푸치노 머신, 화장실, 집까지 풀고 부수고 늘어놓는다. 물건들은 사실 마음의 메타포이다. 그가 해체하고 싶은 것은 그의 마음이다.
그는 마음 안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고 싶다. 그래서 잠가놓았던 마음도 봉인을 해제해서 다 꺼내놓는다. 아내의 애도 기간에 뜬금없이 자판기에서 초콜릿이 안 나왔다고 장문의 항의 편지를 자판기 회사에 매일 쓴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하지도 못하는 말을 거기에 끝없이 쓴다. 그 회사의 고객센터에 근무하며 그의 슬픈 마음을 편지로 읽고 공감해 주는 캐런은 심리학적으로 데이비스가 예전에 발달시키지 못했던 마음의 여성적인 부분인 아니마의 메타포이다. 그녀에게 그동안 못했던 말을 쏟아내면서 데이비스는 마음의 균형을 찾아간다.
그가 자신의 마음을 해체해서 찾아낸 그의 중요한 결함은 무엇일까?
바로 아내의 사랑을 당연하게 알고 그녀에게 무심했던 점이다. 그토록 귀엽고 유머러스한 아내가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하는 것을 그는 무시했었다. 줄리아가 다른 사람의 아이를 임신했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가 애타게 자신의 사랑을 원했고 너무도 외로웠다는 것의 반증이라는 것을 안다. 티브이에서 일본원숭이들이 눈밭 위에서 열을 지어 앉아서 옆의 원숭이를 쓰다듬으며 털을 골라주는 장면을 보면서, 데이비스는 아내인 줄리아도 그저 남편과 사랑하고 아이도 낳고 서로 쓰다듬고 살고 싶은 소망을 가졌었는데 자신이 무심하게 그녀를 외롭게 놔두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린다.
딸을 잃어 누구보다도 슬펐을 장인 앞에서 무례하게 굴었던 자신을 사과하며 데이비스는 비로소 장인을 안고 펑펑 운다. 그리고 아내가 가장 기뻐할 방법으로 그녀를 애도하겠다고 말한다.
누가 보아도 데이비스가 멀쩡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가 하는 이상한 행동은 다 슬퍼서 하는 행동들이다. 만일 질병처럼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던 죽음이라면 그도 적절하게 대비했을 텐데, 느닷없이 닥친 죽음은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일이 닥쳤을 때는 무감각 내지는 마비 상태가 되었다. 고지식하게도 자신의 마음을 해체해서 무엇이 잘못되었었나를 찾고,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그제야 마음 놓고 슬퍼하는 데이비스를 보면, 감정이란 저절로 드러나는것이 아니라 평소에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드러나는 것 같다.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가 어떤 감정을 가졌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