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디 아일>-지게차와 함께 춤을

일터에서 파도소리를 듣는 사람

by 윤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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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마르크스를 소환하지 않아도 우리는 주변에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소외된 노동자의 삶에 대해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다. 어떤 물류 센터에서는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한해서 직원들에게 비뇨기과 질환이 많고, 휴대전화도 압수해서 자연재해 뉴스를 못 보게 하는 바람에 제때 피하지 못해 노동자가 희생된 뉴스 등,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비인간적인 환경과 불행한 사고를 접해왔다.

그래서 그런 사례와 전혀 다른 이 영화의 분위기는 마치 동화와 같이 순진해 보이기까지 한다. 일터에 가고 싶어 집에서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수 없고 외로운 청년, 크리스티안이 대형 마트에 취직하러 온다.

그의 팔과 목의 문신을 본 매니저 티노는 그것이 드러나지 않게 옷으로 잘 가리게 한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매장에는 낮에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고, 저녁 근무인 크리스티안이 퇴근하는 밤은 원래 캄캄해서 하루 종일 빛이 없는 생활이다.

음료 파트에서 일하게 된 그를 사수 브루노가 챙긴다. 처음이라 미숙해서 몸을 써서 짐을 옮기는 일만 하고 지게차는 쓸 엄두도 내지 못한다. 퉁명스러운 듯해도 브루노는 자상하게 업무를 알려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게차 운전하는 법도 가르쳐준다. 또한 그는 휴식 시간에 주인공과 담배도 나누어 피우고 다른 동료와 15분 동안 체스도 즐긴다.

선반에서 물건을 정리하던 그는 틈으로 선반 반대편의 캔디 파트에서 일하는 매력적인 여성 마리온을 발견한다. 그 순간 그는 머릿속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다. 그녀와 휴양지 포스터가 붙어있는 휴게실에서 자판기의 커피를 함께 마시며 잠깐씩의 대화를 한다. 그녀의 생일에는 폐기하려던 초코바에 초를 꽂아 축하해준다.

매니저 티노는 영업시간이 끝나는 10시가 되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틀어서 직원들을 위로해주고, 유통기한이 지난 많은 양의 식품을 폐기하면서 그것들을 먹으면 안 되고 들키면 해고라고 알려주지만, 슬쩍 소시지를 하나 꺼내어 먹는 것을 보여주며 걸리지만 않으면 먹어도 괜찮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크리스마스에 부하 직원들을 모아 매장 밖에 의자를 내놓고 유통기한 지난 소시지를 바비큐 해서 맥주와 함께 직원들과 나누며 파티를 한다.


근무 중에 마리안을 바라보고 같이 커피 마시는 것이 낙인 주인공은 동료로부터 그녀가 결혼했으며 폭력적인 남편과 불행한 생활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를 훔쳐보고 온다. 그녀가 병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자 실망한 크리스티안이 폭음하며 방황하자 브루노는 그를 자기 집에 초대해서 함께 술을 마시며 대화하다가 크리스티안이 소년 시절 절도로 소년원에 2년 복역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은 과거 동독 시절 트럭 운전수로 오랫동안 일했다고 하면서 트럭을 타고 쌩쌩 달리던 그때가 그립다고 한다.

다음날 출근했을 때 마리온이 다시 나와 있었고 크리스티안은 그녀를 도와 냉동고에서 일을 하며 코를 맞대는 에스키모식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브루노가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는다. 직원들 모두 그가 늘 이야기했던 아내가 실제로는 없었다는 것도 몰랐다며 슬퍼한다. 매니저는 브루노가 평소 크리스티안을 칭찬했다며 그를 음료 파트 담당으로 승진시키고 지게차를 능숙하게 운전하게 된 그는 마리온을 태우고 통로를 부드럽게 활주 한다. 둘은 함께 지게차의 팔을 내릴 때 나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대형 마트가 생활 터전인 단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이 답답하고 삭막할 것이라는 편견을 단번에 날려주는 영화였다. 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은 취미도 저급할 것이라는 편견도 함께 날려주었다. 배경이 독일이라 우리와 환경이 다르고, 영화라서 구성을 단순화시키고 약간의 환상을 첨가한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낮고 돈이 많지 않아도 공동체에서 서로의 지지를 받으며 따뜻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는 기쁨이 상당했다.

영업이 끝나고 직원들만 남아서 일을 할 때 매니저는 클래식 음악에 위로의 말을 얹어 방송을 시작한다. 동료들은 신입사원의 서툰 작업도 조마조마 지켜보며 격려해준다. 어두운 매장에 바라만 봐도 빛이 되는 여성도 있다. 휴식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담배도 나누어 피울 수 있다. 힘들어하는 동료를 집에 초대해서 한잔하며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선배도 있다. 짐을 나르는 캐리어나 지게차를 예술적으로 조작하는 재미도 있다.


주인공은 심지어 일에 지쳐 집에 빨리 가서 쉬는 것이 아니라 일터에 나오려고 집에서 충전하고 대기한다. 일터에서 매일의 반복이 지겨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의 작은 변주가 그를 살아있게 한다. 말수 없던 그의 얼굴은 점점 밝아지고 말도 많아진다. 선배인 브루노는 주인공이 과거에 절도사건으로 소년원에 복무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고 자존감을 북돋아 주는 인생의 멘토 역할을 해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은 직장 상사는 신입을 괴롭히고, 노동은 짐이고 인간을 소외시키는 원인이라는 것인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브루노의 자살 이유도 그가 독일의 통일로 인해서 타의로 직업을 이동하게 되고 아내도 떠나게 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의한 우울증이어서 과거와 연관이 될 뿐 직장 내의 문제는 아니다.

크리스티안의 기혼자 마리온에 대한 사랑은 선을 넘지 않고 인생에 빛을 줄 뿐이다.(에스키모식 키스가 그들의 절제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매장 통로에서 오히려 숨을 쉬고 지게차를 타고 춤추듯 달리고 바다를 상상할 수 있다. (영화 포스터는 주인공과 마리온이 함께 지게차를 타고 통로를 지나 환상의 바다로 향하는 사진이다.) 그가 나중에는 지게차를 얼마나 우아하게 조작하는지 그가 마치 지게차와 함께 음악에 맞추어 월츠를 추는 것 같았다.


영화에서 심리학적인 마음의 상징은 보통 바다나 집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형 마트가 주인공의 마음, 혹은 뇌를 보여주는 소재로 쓰였을 때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결과는 너무 신선했다. 선반 위의 물건들을 사람의 기억의 은유라고 볼 때 어떤 것들이 있는지 파악하고 옮기고 정리하고, 지게차를 타고 통로를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자아가 기억들 사이를 헤엄치는 것의 비유로 느껴져서 아름다웠다.

또한 자신의 마음속에서 여성적인 부분인 아니마는 마트에서 일하는 마리온이라는 여성으로 표현되어 그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든다. 그녀 덕분으로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가 미숙했던 시절의 페르소나는 몸에 그린 문신으로 보인다. 그러나 브루노와 동료들은 그를 기다려주고 지지해준다. 멘토들의 도움으로 그는 점점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

지게차를 잘 다루게 된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조정하는 자아가 능숙해졌다는 의미이다.

자아가 아니마와 함께 지게차를 타고 기억의 사이(통로)를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은 능숙함을 넘어 예술의 경지 즉, 통합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미숙한 시기를 지나 훈련된 자아로 혼돈의 무의식을 조절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그 성숙의 과정이 일(노동, 직업, 동료관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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