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훤칠한 미남으로 ‘미이라’에 출연했던 브랜든 프레이저가 외모뿐 아니라 실제 인생도 망가진 채 이 영화에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주제와 비슷하게, 주연 배우인 그도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타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게 되면서 두 배로 감동을 주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연극을 영화화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연극 무대처럼 하나의 세팅에 모든 인물이 출연하면서 진행된다.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는 대화를 통해서 주인공의 인생과 출연 인물들과의 관계를 조명하는 흥미로운 연극적 구조를 갖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찰리-
찰리는 대학에서 글쓰기 지도를 하는 교수였는데 딸이 8살이 되었을 때 동성 제자였던 앨런과 사랑하게 되어 아내와 딸을 버리고 집을 나온다. 딸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보고 싶어 하지만 전 아내가 반대하여 만날 수 없었다. 연인인 앨런은 교회에서도 파문당하고 가족에게서도 버림을 받게 되어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살한다. 이에 절망한 찰리는 원래도 거구였지만 자포자기하고 먹기만 하는 식이장애 때문에 혼자 걸을 수도 없을 정도의 초고도비만 상태가 되고 혈압도 치솟고 호흡도 불편하고 가끔씩 심장발작도 하는 '울혈성 심부전증' 환자가 된다. 시급히 병원에 가야 하지만 저축한 돈을 딸 엘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려고 병원비로 쓰지 않는다. 현재는 온라인으로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데 카메라를 끄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간호사 리즈-
그녀는 연인이었던 앨런의 입양된 여동생이다. 교회 신도회장이었던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교회도 다니지 않고 사랑하던 오빠를 돌보다가 그가 자살한 뒤 그의 연인인 찰리까지 돌보고 있다. 찰리를 병원에 데리고 가려고 하지만 그가 거절한다. 그녀는 그가 여러 번 죽을뻔 했을때 고비를 넘기도록 돕고, 먹을 식량을 사서 나르고 집안 정리까지 돕고 있다.
-딸 엘리-
똑똑하고 글도 잘쓰는 그녀는 자신이 불과 8살이었을 때 가족을 버린 아버지를 증오하며 그를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온갖 말썽을 부리고 SNS에도 온갖 위악적인 글과 사진을 올리며 학교에서도 정학을 당한다.
-아내 메리-
다정했던 남편이 남자친구와 바람이 나서 집을 떠난후 실망하고, 딸은 감당이 안될 정도로 엇나가서 자신이 딸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고 욕먹을까 봐 남편에게 딸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나중에는 딸이 악마가 되어 아빠와 세상에 나쁜 짓을 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
-선교사 토마스-
고등학교 시절의 일탈로 대마초를 피우다가 아빠에게 걸려 선교회로 쫓겨 나갔으나 그곳의 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아 활동비를 훔쳐 경비로 쓰며 다른 도시에 와서 방문 선교를 하러 다니는 젊은이이다.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교리를 들먹이며 타인을 구원하겠다고 하며 찰리에게 충고한다. 동성애자와 비만한 사람을 역겨워한다.
-피자 배달부 댄-
현관밖에 비대면으로 매일 찰리에게 피자를 배달해 주는 청년이다. 그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찰리가 궁금하여, 숨어서 그가 피자를 픽업할 때 그의 모습을 보고 역겨워하며 놀라서 도망간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찰리가 죽기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 동안 집에 들락거리며 하는 대사를 통해 전체 이야기가 전개된다.
찰리가 심장발작을 일으키며 이제 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느끼면서, 8년이나 보지 못한 딸에게 전화를 해서 부른다. 그녀는 당연히 아빠에게 와서 역겹다는 둥, 쓰레기 같다는 둥 악담을 쏟아붓지만 그는 딸이 아빠에게 버림받고 세상에 대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가 자신과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아는 찰리는 그녀가 자신의 옆에서 글을 쓰면 자신이 저축한 돈을 모두 주겠다고 회유한다. 반면에 엘리는 아빠가 보행기를 쓰지 않고 스스로 나에게로 걸어올 수 있으면 같이 있어 주겠다고 빈정댄다.
엘리는 방문 선교를 통해 찰리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토마스를 구슬려 그가 돈을 훔치고 도망 중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듣고 녹음하고 그의 사진을 찍은 후 그의 고향 교회에 알리고, 그 결과 그의 부모는 모두 용서하니 돌아오라고 하고 토마스도 기뻐하며 그 결과에 만족해한다. 엄마는 그것이 딸 엘리가 토마스를 망치고 싶어서 벌인 악한 행동이라고 하지만, 찰리는 이것을 보고 그녀가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남을 구했다며 기뻐한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끝까지 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고, 애가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라고, 자신의 인생에서 딸 하나는 제대로 살게 해 줬다는 걸 알고 가야겠다고 눈물로 부탁한다.
피자 배달부가 자신을 숨어서 보고 역겨워하고, 토마스도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과 초고도 비만자인 것을 역겨워하는 것을 보자, 찰리는 절망하여 건강에 나쁜 음식을 무한정 입에 쑤셔 넣으며 자학을 하고, 온라인 강의 학생들에게도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날 리즈가 와서 산소호흡기를 연결하며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리고 그때 마침 딸 엘리가 찾아오는데, 찰리는 딸에게 가족을 떠나서 미안하다며 어린 딸에게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그러면서 딸이 예쁘고 글을 잘 쓰는 놀라운 존재이며 자신 인생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한다. 엘리가 집어치우라며 현관문을 여는 순간, 밖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그녀는 몸을 돌려 눈물을 흘리며 찰리에게 “아빠!”라고 부르고, 그의 부탁인 그녀가 ‘백경’에 대해 쓴 에세이를 읽는다.
순간, 찰리가 힘겹게 일어나 딸에게로 발자국을 뗀다. 하얀빛이 둘러싼 하늘로 찰리가 떠오른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찰스는 연인인 앨런을 사랑으로 구하고 싶었지만, 그는 결국 교회와 부모의 절연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다. 그를 구하지 못한 것이다. 가족까지 버리면서 택한 사랑하는 사람이 삶을 포기하자 그는 자신을 학대하며 무조건 먹어서,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비만해지고 병에 걸린다.
이제 곧 죽을 것이 확실해진 시점에서, 그는 자신이 버린 딸이 마음에 걸린다. 어린 딸은 사랑하던 아빠가 떠나자 절망하여 세상을 향해 온갖 위악적인 행동을 하고있다. 그러나 찰스는 딸이 화가 난 마음을 감추지 않고 솔직할 뿐이지 악한 심성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마저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찰스의 삶은 실패 그 자체일 것이다.
엘리는 똑똑하고 글도 잘 쓴다. 자신이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글보다도 솔직하고 명확하다. 엄마가 보내준 딸이 몇 년 전에 쓴 에세이를 그는 성경처럼 되풀이해서 읽는다. 그것은 소설 ‘백경’을 읽고 쓴 에세이이다.
“선장 에이해브는 흰고래를 죽이는 데 평생을 쓴다. 그러나 고래는 불쌍하고 큰 존재일 뿐 나쁜 감정이 없다. 그는 고래를 죽이면 그의 인생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내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에이해브에게 이입한 그녀의 마음에는 이미 고래로 표현되는 아빠를 죽도록 미워하는 것이 그녀의 인생을 나아지게 만들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그녀가 이러한 통찰을 의식화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동안 무수한 위악을 저지를 것이다. 아빠는 이런 방황들이 다 자기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속죄를 한다. 결국 딸도 아빠를 용서하면서 서로를 구원한다.
구원의 상징인 빛이 엘리를 비치고, 찰리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빛의 공간으로 도약한다. 그가 생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리는 장면은 어린 딸과 함께 갔던 해변의 한 때였다.
‘구원’하면 빠지지 않는 종교가 여기서도 등장하지만 힘을 못 쓴다. 연인 앨런을 내치고 죽게 만든 것도 종교였고, 젊은 선교사 토마스도 소화하지 못한 도그마를 미숙하게 적용할 뿐이다. 토마스는 앨런이 육신을 추구했기 때문에 영혼을 망쳤다고 한다. 그가 찰스를 사랑하여 신에게 벌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구원이 신과 종교의 차원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이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가질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고래'가 거구인 찰스의 문학적인 은유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비만인을 가리키는 비속어라고 한다. 작가는 나쁜 의미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계속 소설 ‘백경’의 고래가 인용되는데, 큰 고래가 물을 차고 오르는 장면이 구원의 비유로 여겨진다. 주인공 찰리가 마지막 순간 중력을 이기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여기에 겹친다.
그가 글쓰기 강의를 할 때마다 강조하는 말은, 많이 고쳐 쓸수록 좋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서, 반성적인 사유를 하며 살수록 더 좋은 인생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영화는 처음 쓴 에세이를 여러번 고쳐 좋은 글을만들듯이, 어떤 행동도 후회하고 고치려고 노력한다면 인생 전체의 실패는 아니라는 메시지를 준다.
찰리는 딸을 구함으로써 자신을 무너뜨릴 거대한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기쁘게 삶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