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툴리>-위기에 빠진 엄마 구하기

좋은 엄마는 행복한 엄마다

by 윤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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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던 시대에는 사생활이 희생되기는 했지만 육아나 가족들 보살피는 일이 수월했던 것이 맞다. 그러나 현대의 여성들은 어렸을 때 이러한 복잡한 가족관계를 맛보지도 못했고 남성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고 능력을 펼치고 자유를 맛보다가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다. 유감스럽게도 원시시대부터 여성에게 내려온 유전자는 현대에도 아이가 불편해서 울 때 아빠와는 달리 엄마를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어서 밤이나 낮이나 각성하게 만든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 전 사랑과 생기가 넘치던 말로도 똑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 아이가 하나만 있어도 여성은 그전의 스타일을 구기게 된다. 임신과 출산과 수유 과정으로부터 인간도 동물임을 느끼게 하는 충격을 느끼게 되고 아이의 전 존재가 엄마에 달려있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물론 아이가 엄마를 보고 미소 지으면 긴장이 풀리며 무한한 행복이 밀려오기도 한다.

둘째가 태어나면 차원이 달라진다. 한 아이에게만 집중할 수가 없으면서 두배가 아니라 서너배 힘든 생활이 시작된다.

그런데 말로는 피임에 실패해서 셋째까지 가지게 되었다...

남편, 친척, 보모의 도움 없이 예민한 첫째딸, 충동적 성향의 경계에 있는 둘째 아들, 갓난아이까지 세 명을 혼자서 키우게 된 것이다. 모유 수유까지 하는 말로는 거실에서 가슴을 드러낸 채 수유기로 모유를 짜고, 수면 부족에 지쳐서 멍하니 앉아서 스낵을 먹고 살까지 찐다.

친정 오빠는 지친 여동생을 위하여 야간 보모를 둘 것을 제안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여러 명의 새엄마 밑에서 살았던 그녀는 자신의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고 싶지 않다. 너무 지쳐서 잠깐 눈을 붙였을 때 그녀는 깊은 바다속에서 인어가 유유히 헤엄치는 꿈을 꾼다.

결국 말로는 모든 일을 혼자 하다가 탈진한다.

벼랑 끝의 말로에게 야간 보모가 왔다. 아름답고 기운이 넘치고 아이를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은 툴리이다. 그녀는 밤에 아이들을 잘 보살피는 것뿐 아니라 엄마인 말로까지 위로하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녀 덕분에 말로는 기운을 차리고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인스턴트 식품 대신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에 예쁜 컵케잌을 구워 가서 아이를 기쁘게 해주기도 한다. 가족들도 그런 말로의 변화를 느끼고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날 툴리는 말로와 함께 그녀가 결혼 이후에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밤 외출을 한다. 그리고는 이제는 떠나겠다고 말한다.

둘이 돌아오는 길에 말로는 술을 마시고 졸음 운전을 하다가 사고가 나서 물에 빠진다. 말로가 물에 빠진 차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할 때 물속에서 툴리로 보이는 인어가 나타나 말로의 안전 벨트를 풀어 탈출하게 해준다.


그러나 병원에 왔을때 말로는 혼자였다. 사실 아무도 툴리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도 이야기를 들었을 뿐 밤에 툴리를 본적이 없었고 둘이 술 마시던 바에서도 툴리를 본 사람은 없었다.

툴리는 말로의 결혼전 이름이었고 한계에 다다른 말로가 마음속에서 꺼낸 빛나던 자신이었다.

피폐해진 말로를 구할 수 있는 툴리는 그녀의 풍부한 무의식속에 살아있는 빛나는 존재, 아이들을 사랑하고 남편을 위로하고 무엇보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인 ‘자기’였다.



힘들지만 한사람이 두 사람의 몫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너 사람의 몫을 할 수는 없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살다가 쓰러진 말로에게 툴리는 말한다. “나는 당신을 보살피러 왔어요. 지금의 위기 상황을 넘길 수 있게 도우러 왔어요. 자신을 사랑해야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어요”

흔히 독박 육아라는 말로 남자들을 비난하지만 혼자 돈벌이를 하는 남자도 많은데 그런 용어는 쓰지 않는 것으로 보면 적절한 용어는 아닌 것 같다. 육아와 돈벌이는 둘 다 힘들지만 돈 버는 일 역시 사람의 몸과 영혼을 상하게 할 정도로 힘들 때도 있다. 말로의 남편도 지쳐있어서 아내의 상태를 모르다가 유감스럽게도 아내가 이런 지경에 이른 후에야 레슨을 얻었다. 그는 아내가 이렇게 힘든지 진짜 몰랐다. 어쩌면 원시 시대부터 남성의 유전자는 아기가 배고파서 울 때 잠을 깨는 쪽으로 발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사냥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맥락에서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세 아이를 기르고 교육시킬 돈을 벌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보통 가장이다. 남편은 퇴근 후 잠깐이지만 자기만의 휴식 시간을 갖는다. 낮에 일터에서 너무 힘들게 일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잠깐 놀고 진이 빠져 자기 전에 멍하니 침대에서 모니터를 보며 게임을 하며 머리를 비우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심각한 상태를 인지하고 그것이 자기만의 호사였음을 깨닫고 아내 옆에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엄마를 힘들게 하던 정서장애 둘째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도 매일 밤 멍하니 브러시로 아이의 몸을 솔질해주는 것 같은 유사 치료 행위가 아니라 엄마의 관심과 사랑임을 보여주면서 둘째 아이도 점차 사회적으로 적응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이들은 엄마가 바빠서 자기와 개별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리다. 가족 전체와의 관계뿐 아니라, 짧더라도 엄마와의 단독으로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계적인 솔질 대신에 둘이 눈 맞추고 이야기할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힘든 점보다 좋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주고받기가 기본이고 부부 사이도 예외는 없다. 유일하게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만이 예외이다. 사랑을 주기만해도 아깝지 않은 대상은 자식들밖에 없다. 이 경험은 너무나 특별해서 살면서 놓치면 손해일 정도이다. 물론 이런 감정이 생기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생물이 번성하려면 후손을 이어야 하는 쪽으로 유전자가 결정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되었건 다시 대가족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오늘날의 가정 시스템이 지속 가능하려면 즉, 엄마와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일단 자녀 수를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가져야 할 것 같다.

또한 육아가 심각하게 힘든 몇 년은 남편, 윗세대 부모, 보모등 가능한 모든 도움을 받아서 이 시기를 넘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를 아무리 사랑해도 자신을 잃을 정도가 된다면 좋은 엄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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