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영화마다 세계가 독특하고 파격적이어서 논란을 일으키는 라스 폰트리에 감독의 작품이다. 이 영화도 기이하면서도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할 이야깃거리도 많다.
영화 도입부의 추락하는 새들과, 해시계의 그림자 바늘이 두 개인 섬뜩한 장면과, 배경이었던 그림이 타들어가는 장면과, 지구에 다가오는 소행성의 모습과, 웨딩드레스를 입고 물에 누워있는 저스틴의 모습 등, 서늘한 파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부 저스틴-
저스틴이 결혼하게 되어 언니 클레어는 자신의 집에서 결혼식을 성대하게 열어주려고 오래전부터 준비를 한다. 클레어의 남편이 엄청 부자라서 그의 집은 거대한 부지와 성과 같은 저택과 가족들이 타는 말들이 있는 마구간과 심지어는 18홀의 골프 코스까지 갖춘 어마어마한 집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오래 준비한 결혼식에 손님들도 다 와서 기다리는데 신랑 신부가 두 시간이나 늦게 도착한다. 겨우 시작한 결혼식에서 부모의 축사순서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어린 애인을 두 명이나 데리고 와서 횡설수설하고,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는 싸늘하게 결혼은 왜 하냐며 빈정거린다. 표정이 어두워진 저스틴을 언니 클레어가 달래고 형부도 결혼식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으니 꼭 행복해야 한다고 압박한다. 카피라이터인 저스틴의 회사 사장은 결혼식에서도 좋은 카피를 만들라고 하며 신입사원을 저스틴에게 붙여주면서 카피를 받아오라고 한다.
겨우 결혼식의 순서를 따라가던 저스틴은 자주 식장을 이탈해서 밖에 나가 골프 카트를 몰고 다니거나 조카를 자신이 재워주겠다며 들어와서는 목욕을 하는 등 이상한 행동들을 한다. 달래는 언니에게 그녀는 자신이 마치 엉켜있는 잿빛 실타래를 지나는 것 같다며 그것이 다리를 휘감아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다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한다. 엄마에게도 힘들다고 호소해 보지만, 엄마는 꼴 보기 싫으니 나가라며 자신이 선택했으면 그냥 참으라고 소리 지른다. 아버지에게도 그날 밤 집에 머물러달라고 했지만 젊은 여자를 따라 그는 가버린다.
야외 잔디밭에서 풍등을 날리는 행사를 하고 아름다운 풍등들이 수놓는 밤하늘을 보는데 전갈자리 근처의 붉은 별과 안타레스 별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온 저스틴과 신랑이 초야를 치르려고 하는 순간 저스틴이 중지하고 드레스를 입은 채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때 우연히 밖에 있던 회사 신입사원이 다가오자 그녀는 잔디밭에서 다짜고짜 그와 정사를 벌이고 2층 방에 있던 신랑이 그 장면을 보게 된다. 결혼식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고 신랑과 그의 가족들은 집을 떠난다.
-2부 클레어-
결혼식을 망치고 속물 사장과도 싸우고 회사를 그만둔 저스틴은 우울증이 심해져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언니 클레어가 집에 데려와 보살피지만 그녀는 혼자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고 음식도 먹지 못한다.
우주에서는 지구로 ‘멜랑콜리아’라는 소행성이 다가오고 있다. 전갈자리쪽에서 이탈해서 안타레스를 가리고 있다. 과학자들도 그것이 지구와 충돌할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어서 클레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은 며칠 후면 그것이 지나갈 거라고 아내를 안심시키고 그것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면 장관일 거라고 한다. 말들이 흥분해서 날뛰고, 새들이 이상하게 날고, 계절에 맞지 않는 눈과 우박이 쏟아진다. 자매가 좋아하는 승마를 해보지만 말은 더 이상 달리려고 하지 않는다.
불안한 클레어와 달리 저스틴은 침착하게 동요하지 않는다. 한밤중에 홀로 물가로 간 그녀는 옷을 벗고 나체로 소행성 ‘멜랑콜리아’의 빛을 받으며 누워있다.
남편은 우주쇼를 보겠다며 테라스에 망원경을 설치하고 어린 아들은 행성이 다가오는 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고리를 철사로 만든다. 불안해진 클레어는 시내로 나가 다량의 수면제를 사 오고 이를 본 남편은 비웃는다. 갈수록 침착해지는 저스틴은 지구가 사악해서 없어져도 애석할 것 없다며 지구에만 있는 생명체는 곧 없어질 것이라고 한다.
드디어 마지막 날 아침, 거대한 행성이 지평선에서 떠오르고 중력이 달라져서 숨이 가쁜 클레어가 철사로 행성의 크기를 재고 5분 후 변동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작아진 것을 보고 이제 행성이 물러간다며 기뻐한다. 얼마 뒤 잠깐 졸다가 클레어가 눈을 떴을 때 남편이 옆에 없었고 고리를 다시 확인해 보니 행성은 더 커져있었다. 행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얼마후면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다. 그녀를 안심시키던 남편은 그녀가 사다 놓은 수면제를 다 삼키고 마구간에 죽어있었다.
이제 세상에는 그녀와 저스틴과 어린 아들만이 남아있다. 공포에 휩싸인 클레어는 아이를 안고 허둥지둥하지만 도망갈 곳은 없고, 저스틴은 아이를 위해 잔디밭 위에 마법의 동굴이라며 나뭇가지로 보금자리를 만들고 들어가 모두 그 안에서 마지막을 맞는다.
솔직히 나는 우울증을 마음이 우울한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실제로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하는 감독은, 겪어본 자로서 우울증이 무엇인지를 환자의 상태와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보여준다. 저스틴이 혼자서 택시도 못 타고 스스로 욕조 안으로 발을 넣지도 못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울증은 이 정도로 마음의 에너지가 바닥이 난 상태라고 한다. 먹지도 씻지도 못하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담담하게 파멸을 받아들이게 된다.
1부에서는 우울증 때문에 그녀가 현실의 배우자를 맞는데 실패하는 것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우울(멜랑콜리아)’이라는 소행성이 지구를 파괴해서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당연히 우울증이 마음을 파괴하는 것의 비유로 볼 수 있다.
결혼식에서의 부모가 보여준 행태로 보았을 때 저스틴은 어릴때 그녀를 무조건 믿고 지지해 주는 존재 없이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언니가 세상에 두발을 딛고 서서 그녀를 보살피고 도와주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불안정한 아버지와 냉소적인 엄마 아래서 힘들게 자란 그녀는 결국 우울증이 심해져서 스스로를 파괴한다.
결혼식에서도 그녀는 겨우 버티다가 결국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며 모든 것을 망친다. 바닥까지 떨어진 그녀는 파국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두 개의 달이 뜬 기괴한 밤에 물가에 가서 그녀는 파괴의 행성이 내는 빛을 온몸으로 흡수한다. 일생 언니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의 리드에 끌려오던 저스틴은 이번에는 언니의 도움도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이 겨우 기대던 언니와 자기가 유일하게 간직해 온 순수한 희망인 조카까지 데리고 담담하게 파국을 맞는다.
저스틴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물속에 누워있는 컷은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그린 그림 ‘오필리어’와 겹친다. 오필리어도 사랑하는 연인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자 절망하여 물에 들어가 자살했는데, 아마 그녀도 그때 세상을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모두 사라지고 넋이 나가서 물에 들어갔을 것이다. 누구도 그녀를 우울로부터 구해낼 수는 없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골프장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저스틴의 모습이나, 두 개의 달이 휘영청 떠있는 밤하늘이나, 거대한 행성이 지평선에 떠오르는 광경이 이 세상 모습이 아닌 꿈같고 초현실적인데 이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내면의 황량함을 표현한 것이다.
저스틴도 언니 클레어처럼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언니도 같은 부모 아래서 자랐지만 극복했는데, 저스틴은 더 어려서 감당할수 없었고, 부모의 나쁜 영향이 그녀의 마음 에너지를 모두 빼앗아 버린 것이다. 언니의 이미지는 이제까지 그녀의 중심이었다. 언니의 도움으로 겨우 버티던 그녀가, 마지막에 자신을 지지하던 언니와 순수한 희망이던 조카의 끈까지 놓아버리고 자기의 세계를 모두 불태워 없애 버린다. 언니와 조카로 비유되는 마음속 긍정적 부분은 '우울'이란 압도적인 부정적 세력을 물리치기에는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