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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ug 24. 2023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

기록의 힘

    

모든 것은 사라진다.

소소한 일상이 그냥 흘러가고 절절하던 감정과 허무한 몸짓과 아름다운 음악이 결국 사라진다. 더 나아가면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고 일컫던 것들도 잊히고, 더 긴 시간이 흐르면 인류도 지구도 사라질 것이다.

     

인류도 예술도 그러할 진데 보통 사람들의 작은 역사는 오죽할 것인가.

나의 경우 인생의 커리어에서 대단한 성과를 이룬 것도 아니고, 그저 게으르지 않게 해야할 일을 하며 좋아하는 일들도 놓지 않고 살았을 뿐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아이들을 키우고 부모님을 도와드리고 인문학 공부와 독서와 영화감상을 오랫동안 해왔으나, 하는 동안의 감동이 끝나면 그것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하는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러다가 브런치 스토리를 만났다. 내가 책과 영화와 소소한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과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것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다른 사람과 나눈다는 생각보다는 내 머릿속에서 공간이 좁다며 시끄럽게 떠드는 이야기들을 나의 뇌의 외장하드에 정리하겠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다. 혼자 일하고 생각하고 혼자 좋다가 죽어 아무도 그것을 모르면 내가 태어난 의미가 무엇인가 싶었다. 훌륭한 글들도 많은 세상에 창작도 아닌 내 글이 무슨 대수이겠냐만, 나에게는 이것들을 정리해서 기록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 중에서도 미술 같은 공간 예술은 창작의 결과가 남아서 손에 잡히고 나중에도 볼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시간 예술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는 한번 연주하면 그걸로 끝이었을 테니 그들도 허무감을 극복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혼자 연습하고 즐기거나, 소수의 애호가들 앞에서 연주하거나, 유명한 연주가의 경우에만 큰 극장에서 연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녹음 기술이 발달해서 좋은 음질로 과거의 연주를 재생할 수 있고 눈앞에서 그들이 연주하는 것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할 정도로 동영상의 질도 좋아졌다. 글이든 녹음이든 사진이나 동영상이든 어떤 순간을 기록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장소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번에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자면, 존재감 없는 주부들이 하는 집안일의 무수한 반복은 그들을 회의감에 빠트리기 쉽다. 주부들에게는 아이들을 키우는 일과 부모님을 보살피는 일과 음식을 마련하는 일과 허드렛 일들이 집안에 산적해 있다.

매번 차리는 밥상은 긴 시간의 노력을 들여도, 당연한 듯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가족들에게 감사를 받기도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는일이고, 이것은 가족을 살리는 중요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반복의 지루함과 허무함을 극복하려하지만, 이것만으로 긴 세월을 버티게 하는 힘을 주기는 어렵다. 오래전 기록에서도 몇 시간을 들여서 차린 음식을 사냥에서 돌아온 남자들이 10분 만에 먹어 치우자 허무해서 울었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글과 에세이에 이어 부모님과 이별하는 이야기와  하는 요리에 대한 글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자랑을 위한 것이나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돌아가셔서 안계신 부모님과 내가 만든 음식이 한때는 확실히 존재했었다는 것의 확인, 그때 어떤 마음이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기록한 것이었을 뿐이다. 욕심을 내자면 내가 나중에 없어도 남은 가족들이 나를 기억하고 먹었던 음식의 레시피도 활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있기는 했다. 음식의 경우 유명한 사람들처럼 좋은 카메라로 찍지도 못하고 그냥 휴대폰으로 찍었고, 내가 요리하는 과정을 찍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요리를 하다가 중간에 멈추고 사진을 찍었는데,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힘들지 않았다. 이것은 유명식당에 가서 요리사가 해준 근사한 요리를 찍어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이다. 소소하지만 내 삶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하자면 이런 행위가 부모님과의 마지막 시간이나 요리가 힘들었다는 감정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레시피를 겠다고 마음먹은 요리를 할 때는 힘들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몰입했었다. 이렇게 하니 일상이 일종의 행위 예술 작업 비슷한 것이 되었다. 내가 요리를 기록하기 시작하가족들도 이제는 정성껏 음식을 만든 수고가 실물뿐 아니라 글로도 보이니 더 인정해주, 설거지도 도와주, 완성된 요리의 사진을 충분히 찍을 때까지 기다려주기까지 한다.

그래서 회의에 빠진 주부들에게 육아와 살림과 요리를 한 뒤 기록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나누라는 제안을 하고 싶다.(심지어 나누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가치가 있다) 이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볼 수 있고, 인생에서 다가오는 일들을 기꺼이 즐기면서  할 수 있게 해준다.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질 것이고, 또 누가 나의 작업의 결과를 봐주지도 않겠지만, 자기 자신의 삶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은 자기의 인생에 스스로 의미를 주는 일이다. 자신의 생각과 하는 일을 들여다보는 행위는 사람에게 자존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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