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한구석의 조그만 테이블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다가 손님이 오거나 일이 생기면 황급히 노트 위에 천조각을 덮어서 숨기고 일어나는 제인 오스틴을 그려본다. 놀라운 재능을 가진 이 여성 작가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방해받지 않고 작품 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더 많은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인간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었다.
물론 울프는 자립할 수 있는 돈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남에게 의존하여 하기 싫은 일만 하다가 인생을 보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사장이건 배우자이건 경제권을 가진 사람의 비위는 맞추어야 한다. 운이 좋게도 그녀는 친척이 그녀에게 평생 독립할 수 있을 만한 유산을 남겨주었는데, 누구나 그런 운이 따르는 것은 아니라서 유감스럽게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런 것을 바랄 수는 없다.
또 하나, 근대 이전의 위대하다고 알려진 여성 작가들 중 많은 사람들이 미혼이어서 자녀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 시대에는 결혼을 하는 경우 자녀가 많아서 육아 이외의 다른 일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유산도 없고 결혼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는 힘들 것이다. 현대에는 공간적인 의미의 개인의 방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기만의 방이란 일정 시간 이상 방해받지 않고 자기만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심리적 자유까지 포함하는 공간의 의미이다. 아파트에서는 방문을 닫아도 가족들의 일상이 다 들리고, 처리해야 할 집안일이 쌓여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들의 시간이 생각보다 많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같은 한 시간이라도 10분씩 여섯 번 떨어져서 합친 한 시간과, 몰아서 한 시간이 있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완전한 한 시간은 몰입이 가능하지만 조각난 10분의 시간을 모아놓은 한 시간은 짧은 휴식 이외에는 어떤 의미 있는 일도 할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대의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긴 호흡의 글이나 위대한 글이 적었던 것은 재능의 부족이 아니라 자신만의 공간에서 긴 시간 몰입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었다.
그래서 추천하고 싶은 것은 여성들에게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에게 허용하라는 것인데, 여기서는 승진에 필요한 스펙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고 명상이나 독서나 글쓰기처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이다.
전업주부도 개인 시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인데 아이가 커서 집단생활을 시작할 나이가 되었다면 일단 집에서 일정 시간 동안 나오기를 추천한다. 집이 아무리 넓고 비어 있어도 집안일이 눈에 띄어 하다보면 시간은 조각나고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야말로 집사람이 된다. 집안일을 잠시 미루고 일정 시간을 내어 나의 존재에 필요한 일을 하러 카페나 도서관에 가기를 권한다. 친구와 사교하러 가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혼자 간다. 차도 마시고 맑은 정신으로 사색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쓴다. 이렇게 자신을 위한 시간을 잠시라도 가지면, 아이도 더 잘 키울 수 있고 집안일도 더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 물론 이것도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기는 하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무엇보다 이러한 마음의 여유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가, 세상이나 남성들을 원망하지 않게 만든다는 것이다. 짧은 인생에서 쓸데없이 남 원망하느라 시간 낭비하지 않고 마음에 분노를 담지 않을 수 있다. 그들에게 희생의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 비위를 맞출 필요도 없다.
자기를 돌보고 자신감을 찾게 되면 파트너인 남성들의 불쌍한 처지도 보인다. 어떤 면에서 현대 남성들에게는 조각난 시간조차 없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을 경제 활동에 쓰고 돌아와도 자신만의 공간은 없고 불행한 아내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경제적인 여유나 자기만의 방은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조건이다. 인간에게는 산책하고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만일 남성에게 모든 경제적 부담을 지게 하고 여성만 여유를 누린다면 그 또한 불공평한 일일 것이다.
다른 성을 이해하고 통합하면 여성이 불평이 아닌 진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남성들 또한 작품에서 멋대로 상상한 여성이 아닌 진짜 여성을 묘사할 수 있다. 심리학에서 여성의 마음에도 남성적인 부분인 아니무스가 있고 남성의 마음에도 여성적이 부분인 아니마가 있다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들을 보면 두 가지 성을 다 이해해서 표현한 사람들이 많다.
경제적 여유와 자신의 공간, 자신을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는 용기는 성과 시대를 초월한 자유로운 인간의 조건이다. 그리스 시대에도 자유인은 표면적으로는 귀족 남성이었으나 실제로는 돈을 벌지 않아도 여가가 있어서 자유롭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여성이 이른 나이에 강제로 결혼하고, 도서관 출입도 할 수 없고, 돈 벌 수 있는 수단도 없고, 심지어 돈을 소유할 수도 없는 등 절대적으로 차별받았던 때와는 달리, 현대에는 여성도 반대 성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아도 된다. 따라서 자신을 포기하는 일은 어쩌면 치열하게 살겠다는 용기의 부족일 수도 있겠다.
누구나 경제적 여유를 확보하고 자녀를 키우기 위해 일정 시간을 쓴 뒤, 버지니아 울프의 말대로 느긋하게 과거와 미래를 사유하고 책을 보면서 꿈꾸고 생각의 낚시줄을 강물 깊이 드리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모두가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나 자신으로, 내 영혼의 색깔대로 살면서 내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스스로에게 참으로 미안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