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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pr 24. 2023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

프롤로그

    

오랫동안 그냥, 열심히 살았었다.

그러나 마치 음식의 맛도 느끼지 못하면서 덩어리 채 그냥 삼킨 듯하였다.

그러다가 인생의 주기에서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 번쩍 정신을 차렸다. 유의미하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시점에서 지금까지의 관성으로 가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지난 생각과 현재 마음을 글로 쓰면서 인생을 꼭꼭 씹어서 쓴맛 단맛 신맛 다 느끼고 싶었다. 지나간 과거를 소환하고 현재를 붙잡고 미래를 내다보며 글을 쓰는 중이다.

친구나 가족과 대화하는 것도 좋지만, 그들도 가깝고 사랑하는 존재이기는 하나 결국은 타인이어서 나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모두 공유할 수는 없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나를 각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스스로와의 대화이기 때문에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할 수 있게 한다. 못생긴 것은 못생긴 대로 나는 이렇게 생겼다고 말할 수 있게 한다. 스스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여 나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내 마음의 주인은 나이므로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더라도 그동안의 페르소나를 벗고 용감하게 쓸 수 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목적도 없으니 솔직할 수 있다. 평가받는 숙제가 아니니 부담스럽지도 않다. 또한 평소 같으면 나의 불편한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일도 글로 해소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글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하여 쓰기 전에는 의식 수준에서 전혀 몰랐던 나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에서 억압했던 무의식의 내용들이 경계를 뚫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쓰기 시작했을 때의 의도와 결과가 다른 경우도 많다. 글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다.

     

해결되지 않는 고민이나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을 강박적으로 마음에 담고 있으면 장기적으로 정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글로 쓰면 내 마음 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 걱정거리를 마음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노트로 옮기니 어떻게 보면 남의 일같이 만들 수 있다. 그것들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책임하게 잊은 것이 아니라 노트에 잘 넣어두었다가 내가 나중에 대면할 힘이 생겼을 때 꺼내서 기억하고 해결할 수 있다. 죄책감도 줄일 수 있고 내용을 객관화해서 판단할 수도 있게 된다. 실제로 오래 담아두었던 글을 꺼내서 보면 과거처럼 흥분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그때를 바라볼 수 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해답이 보일 때도 있다.

또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이제는 성숙한 자아가 그때로 돌아가 어린 자아를 위로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글쓰기란 수많은 타임 슬립 영화들처럼 이제는 힘이 생긴 자아가, 힘들었던 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힘들었던 나를 보듬는 작업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가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어른들이 ‘내 인생을 글로 쓰면 책으로 몇 권은 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들 중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쓴 사람은 많지 않다. 마음에 이야기를 가두어 둔 어른들이 끝없이 과거를 소환하며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나이가 들어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때, 후회와 억울함을 안고 불행하게 지내다가 마무리하는 인생은 끔찍할 것이다. 글로 자신의 인생을 꺼내서 돌아보고 힘들었던 경험이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다지 회한이 많이 남지는 않을 것이다. 최소한 자기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해석한 스토리를 완결하고 죽을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유전자를 나눈 자식들에게, 많은 재물은 못 남기지만 내 생각과 인생을 담은 글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의외로 자식들은 부모님의 인생과 생각을 모른다. 나도 우리 부모님의 생각을 잘 알지 못했다. 자식들이 죽은 부모가 생각날 때 묘소에 찾아가 감상에 잠기는 것은 부모와 상관없는 자신들의 생각과 자기 위안일 뿐이다. 부모의 진짜 인생과 생각이 담긴 노트를 보며 그들을 추억하면 좋을 것이다. 한때는 자신들보다 더 젊었던 부모들도 그때 미숙했었고 완벽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알면 부모를 용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도 그들의 자식에게 자신의 글을 남기기를 바란다.

따라서 나는 자식들에게 나의 글이 담긴 노트를 유산으로 남긴다.


*얘들아, 유산으로 재산도 많이 남겼으면 좋았을 텐데 노트만 남겨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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