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짓을 해도 사랑스러운 배우가 있다. 미셸 윌리암스이다.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유독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부였다가 여자 주인공이 중간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떠나는 역할이 많다. 귀여운 외모에 가려 폄하되기 쉽지만, 그녀의 연기는 참으로 출중해서 영화 속 그녀의 행동은 관객에게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물론 ‘500일의 썸머’에 나오는 썸머처럼 남자들에게 욕을 엄청 먹는 캐릭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성별에 따라서, 혹은 나이에 따라서 그녀의 행동에 대한 평가와 사랑의 정의는 다르기 마련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고는 작품을 쓰고 싶지만 제대로 된 글은 시작하지 못하고, 홍보 책자의 글을 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다. 등대와 성으로 유명한 루이스버그라는 장소를 홍보하는 글을 쓰기 위해 그곳에 출장 갔다가, 우연히 대니얼이라는 남자와 마주친다. 그와 우연히 같은 비행기의 옆좌석에 앉게 되고, 그녀는 처음 보는 남자에게 비행기 환승에 대한 공포를 고백한다. 자신은 중간에 끼어있는 혼란 상태가 두렵고, 제대로 갈아타지 못해서 공항에 버려져서 아무도 모르게 죽어서 썩을까 봐 두렵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택시를 같이 타고 각자 자신의 주소에서 내리려고 하는데, 우연히 그들의 집은 지척의 이웃이다.
그녀의 남편 루는 다정하고 친절하고 유머가 있는 남자이다. 그의 목표는 닭을 주제로 하는 요리책을 내는 것이어서 집에서 요리는 항상 남편이, 언제나 닭을 주재료로 한다. 그들은 항상 “감자칼로 당신의 껍질을 벗기겠다”등의 농담을 누가 더 센 강도로 하나 시합하며 살고 있다. 루는 자신의 집에 자주 그의 대가족을 불러서 파티를 하고, 루의 어린 조카는 마고를 너무 좋아하고 마고도 그 아이를 아끼고 돌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마고가 미래에 아이를 가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루는 흘려들으며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한다. 마고가 요리하는 루의 뒤에 다가가서 백허그를 하면 루는 요리에 집중하며 그녀를 부드럽게 뿌리친다. 그들은 오누이처럼 친하고, 서로 등지고 자다가, 가끔씩 단조로운 부부생활을 한다.
그는 마고가 샤워를 할 때마다 머리 위에 찬물을 부어 깜짝 놀라게 하고 이것을 끝까지 비밀로 하다가 늙었을 때 추억의 에피소드로 쓸 궁리를 하는 종류의 남자이다.
다음날 새벽에 산책을 하다가 대니얼과 마주치고 그의 집에 들어가 집구경을 하는데, 그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면서 생계 활동으로 인력거를 끌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그렸다며 그림을 보여주는데, 화사하게 꾸미고 웃고 있는 마고의 모습 옆에 우울하고 검은 그림자가 삐져나온 그림이었다. 어느 날, 시누와 함께 단체 수중 에어로빅을 하고 있을 때 얼굴을 들어보니 풀장 옆의 관중석에 대니얼이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수영 후 샤워장에서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데, 요약하자면 “새것은 반짝여서 좋지만, 새것도 언젠가는 헌 것이 된다”라는 이야기이다. 수영 후에 대니얼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 둘은 펍에 들어가 마티니를 시켜놓고, 마고가 머릿속으로 원하는 야한 환상을 대니얼이 말로 표현한다. 그녀는 웃으며 즐거워하고 30년 후에 다시 만나서 환상을 실현하자고 농담을 하며 떠난다.
집으로 돌아와 마고가 요리하는 남편에게 다가가서 허그를 하자 루가 귀찮아하며 그만두라고 하고, 마고는 폭발하여 자신이 여성으로서 남편을 유혹하려면 얼마나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아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실망한 마고는 밤에 혼자 수영장에 가고 이를 본 대니얼이 뒤쫓는다. 풀장의 물속에서 둘이 아름답게 유영하다가 서로 터치하는 순간, 놀란 마고는 물밖으로 뛰쳐나온다.
결혼기념일이 되어 둘은 영화도 보고 멋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루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식사만 하니 무안해진 마고가 이야기 좀 해보라고 하자 루는 간단하게 사랑한다고 하며 다시 식사에 집중한다.
새벽에 대니얼이 인력거 끌고 가는 장소를 아는 마고는 해변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대니얼을 기다리고 둘은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한다. 마고는 그에게 착한 남편 흉을 보는 것이 배신으로 여겨지지만, 허전함을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녀가 평소에 타고 싶었던 센터 아일랜드 공원의 놀이기구 스크램블러를 함께 타며 화려한 조명과, ‘Video killed the radiostar’ 음악에 맞춰 소리 지르던 그녀의 얼굴이 너무 슬픈 표정으로 바뀐다. 운행이 끝나고 음악도 멈추자 다시 환하게 불이 켜진 초라한 놀이공원의 풍경으로 그녀가 쓸쓸하게 돌아온다. 함께 그의 집에 들어간 마고는 울면서 루에게 상처 줄 수 없다며 그와 이별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집에서 시누가 금주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다시 대가족의 파티가 열리고 남편이 맞은편 집 앞에 앉아있던 대니얼을 불러서 그가 들어오자, 마고는 냉랭하게 대하고 그는 상처받고 돌아간다. 그는 다음날 새벽, 루이스버그 등대가 있는 그림 엽서에 “30년 후에 보자”라는 메시지를 써서 현관에 넣고는 이사해 버린다. 그가 이사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픈 마고는 남편에게 그녀의 마음을 고백하고, 남편을 떠나서 대니얼에게 간다. 해변에서 재회한 그들은 빈집을 얻고 그집을 꾸미고 열렬히 사랑하며 산다. 이때 나오는 음악이 스페인 시인이 쓴 가사로 만들었다는 노래 ‘Take This Waltz’ 이다.
세월이 지나고 마고가 루의 조카 때문에 다시 루의 집에 왔을 때 시누가 말한다. “인생에는 갭이 있는데 그것을 다 채우려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루는 그녀의 눈을 둥근 스푼으로 파내고 싶다는 조크를 하고, 마고는 자신도 그러고 싶다고 말하며 둘은 이별한다.
그러나 예상한 대로 열정은 식고, 마고는 머핀을 굽고, 대니얼은 심드렁하게 들어와서 창밖을 보고, 쓸쓸한 표정의 마고는 그의 뒤로 가서 백허그를 한다.
영화의 1차적 플롯으로 보면 이야기는 뻔하다. 샤워장의 여자들 이야기나, 시누의 충고나, 새로운 비디오의 출현으로 과거 라디오 시절의 스타는 한물간다는 내용의 노래나 다 한 목소리로, 바꿔봤자 그놈이 그놈이라고 말한다. 결혼 전에 보이던 열정이나 노력을 결혼 후에도 하는 남자는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사람들은 마고가 대니얼과도 결국 권태로운 시간을 맞는 결말을 보고 고소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마고는 이런 뻔한 교훈을 몰랐을까?
옛날 초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동화가 생각난다. ‘어떤 소년이 동네에 뜬 무지개를 보고 반해서 그것을 쫓아다닌다. 잡으러 가면 물러가고 또 찾아가면 물러가고 해서, 평생 무지개를 쫓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자신은 늙어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 공부는 잘하는 모범생이었지만 단순 무식했던 나는 그 이야기의 주제를 “헛된 꿈을 좇지 마라”로 받아들였다. 나중에 생각하니 이 동화는 인생이란 비록 헛짓거리지만 꿈을 추구하다가 죽는 과정이라는 의미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영화도 마고가 끝이 뻔한 사랑을 하지말라는 뜻은 아닐것이다.
루는 너무 좋은 사람이지만 매일 닭만 요리한다는 비유에서 연상되듯 지루하고, 그에게 아내는 그의 대가족의 한 사람일뿐이고 심지어 아내에게나 누나에게나 똑같은 장난을 한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마고가 아기 이야기를 해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둔감하기까지 하다. 자신이 일하는 시간 외에만 장난치고. 외식을 할 때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식사만 하는 남편을 그녀는 참을 수가 없다. 예민하고 순수한 마고는 그 순간을 꽉 채우는 사랑을 원한다. 연인이라면, 부부라면 어때야 하는지의 시나리오가 그녀의 마음속에 있다. 물론 그녀는 남편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사랑에 빠졌다가 깨었을 때의 환멸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한눈 판 자신의 눈을 도려내고 싶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도 그녀는 그 순간에 충실한 사랑을 원하며 그 춤을 받아들인다.
이제 다른 플롯으로 영화를 본다. 감독이 이런 뻔한 교훈의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고는 작가이다. 지루한 현실에 실망하며 그녀는 다른 상상을 해본다. 출장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알고 보니 이웃이라는, 현실치고는 우연이 너무 겹치는 설정을 한다.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내면의 그림자를 비행기에서 옆좌석의 남자로 설정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마고는 자신이 겉으로 드러내는 모습과 내면에 숨긴 욕망이 분열되었다는 것을 안다.(상상 속 남성 대니얼이 그림으로 알려 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상상 속 인물인 대니얼에게 투사한다. 상상이 의식화되는 순간은 무의식의 상징인 물속에서 대니얼과 터치하고 물밖으로 솟구치는 순간이다. 그녀는 상상을 구체화시키고 머리속으로 그와 살아본다. 영화의 뒷부분 마고가 루를 떠나서 대니얼과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시들고 권태를 느끼는 부분은 마치 필름 빨리 감기를 하는 것처럼 휙 지나간다. 게다가 내용은 그냥 사랑이 아니라 어떤 때는 남자 둘이 나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여자 둘이 나오기도 하는 아주 비현실적인 야한 상상까지 간다. 그리고는 이어서 권태가 온다.
어쩌면 대니얼과 보냈던 시간은 마지막에 마고 혼자서 스크램블러를 타는 동안의 상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녀의 현실은 한결같은 루와의 생활이고, 그녀의 작품(상상)은 자극적인 대니얼과의 사랑이다.
이 영화의 원제목이기도 하고, 스페인의 시인이 쓴 시를 캐나다 가수가 노래로 부른 Take This Waltz는 마고와 대니얼이 격렬한 사랑을 할 때 사운드 트랙으로 나오는 노래이다. 이 춤을 받아들여야, 마고는 죽어가는 또다른 내면의 마고(그림속 허리가 부러진 그림자)를 살릴수 있다. 춤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것이 영화의 일반적인 해석이라면, 상상(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심리적인 해석이다.예술작업이 그녀를 구원하는 것이다.